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162134.jpg
KCI등재 학술저널

우전팔번경(隅田八幡鏡) 銘文에 대한 새로운 考察

New thinking about the Inscriptions of the Suda-Hachiman Bronze Mirror (隅田八幡鏡)

우전팔번경은 비교적 이론 1834년에 발견되었지만, 1914년 타카하시 켄지의 초기 판독과 1934년 후쿠야마 토시오의 全文 판독에 의해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6세기초의 백제와 왜국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선입견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는 관계로, 보다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銅鏡이 일본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일본인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 해 왔다. 그러나 이 동경의 명문은 일본사의 범위를 넘어 동 아시아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져야 올바른 시대상의 복원이 가능하다. 「開中」이 야마오 유키히사(山尾辛久)씨의 주장처럼 「□中」으로 판독되어, 이는 전라도 지방으로, 벽제라 보지만, 이는 논거가 부족하다. 또한 와다 아츠무(和田졸)씨의 주장처럼 「斯麻가 키타셋쯔(北攝津)의 미시다(三嶋)이다」라는 주장이 인정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사 명문의 주요 내용인 「癸未年」의 연대 확정으로부터 동경을 받은 『南弟王』의 규명은 물론 동경을 만들게 한 주체로서의 「斯麻」, 그리고 사마왕의 명령으로 鏡을 만든 「開中費直穢人今州利」등의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관건으로 떠올랐다. 필자는 이러한 현재까지 연구 상황을 참작하여, 우선 여러 설을 객관적 입장에서 정리 한 다음, 「日十大王」으로 판독함은 잘못이며, 따라서 대왕=일본천황 설은 성립 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선행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명문의 올바른 해석이 시도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ggest new thinking about the Suda-Hachiman Bronze Mirror. The mirror is a record with very important historical significance. There are still many uncertainties about the history of Korean and Japan. This paper will study such unclear period,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The key poin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Kyemi-myeon(癸未年) was the year 503 AD. 2. Namjewang(南弟王) was the Japanese Emperor of Keche(繼體). 3. Nirimu(日十六) and Sama(斯麻) was the Munyeong-wang(武寧王) of Baekje. 4. The Japanese king Namje-wang Emperor of Keche and the king Sama(Munyeong-wang) of Baekje were very intimate. In summary, the king Same(Munyeong-wang) of Baekje sent the Suda-Hachiman Bronze Mirror to the Japanese king Namje-wang (Emperor of Keche) as a token of trust.

Ⅰ. 머리말

Ⅱ. 일본에 있어서의 동경의 의미

Ⅲ. 선행연구자들의 諸說

Ⅳ. 명문의 주요 논점에 관한 신 고찰

Ⅴ.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