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南京은 六朝의 고도로서 옛부터 중국 동남의 重鎭으로 여겨져 왔다. 즉, 여러 왕조가 建康에 도읍하여 약 322년간 중국 남부의 정치중심이 되었다. 전통적인 관념으로 남방은 줄곧 중화 정통왕조이자 중국의 통치중심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建康都城은 중국 도성발전사에서 동시대와 隋·唐代의 도시 건설에 대해 적극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육조시대 중국남방의 정치중심으로 남방 대외교류의 都會가 되었으며, 특히 百濟는 육조의 건강에 사절을 비교적 빈번하게 파견하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 泗비시대의 도성과 중국 건강성 사이에 지형, 도성배치 및 명칭 등의 면에서 비교할 만한 유사점이 있다 하겠다. 이에 본고는 남경지역의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인 측면 및 육조시대 建康城 등을 살펴서, 吳나라 이후 여러 왕조가 남경지역에 도읍을 정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The present day Nanjing was the ancient capital of the Six Dynasties Period, and because of this, it was the political center for more than 300 years in the southern China. Traditionally the region has been regarded as the political center of the orthodox Chinese dynasty. The Jiankang Capital provided great influences on both contemporary and Sui and Tang urban construction. Baekje, in particular, frequently dispatched envoys to Jiankang, the political and social center in southern China during the Six Dynasties Period. This diplomatic relationship sheds light on the understanding of the structure and construction of the Baekje Sabi Capital, as the present study sho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