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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의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와 성격(性格)

Ungjin-Dodokbu`s Geographical Location and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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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먼저 웅진도독부가 종래의 견해처럼 웅진이 아닌 사비에 중심지를 두고 있었음을 살폈다. 이어서 웅진도독부의 성격은 도호부가 아닌 도독부였음을 확인하고, 당의 괴뢰정권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웅진도독부는 ``유인원기공비``가 부소산성에서 발견되어진 점이나 신라가 웅진도독부의 통치를 받았던 지역을 점령해가면서 가장 최종 목표지로 삼았던 곳이 사비였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사비에 그 중심지를 두고 있었다. 종래 웅진도독부가 웅진에 있었다고 생각되어진 가장 중요한 근거는 『資治通鑑』의 662년 7월 기록과 ``답설인귀서``의 웅진성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같은 사료의 뒷 부분에서 서술되고 있는 웅진부성의 줄임말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웅진은 당나라 사람들에게 백제를 대표하고 상징해주는 단어로 사용되어졌다. 이런 이유로 백제고지에 설치된 당의 지배기구를 웅진도독부로 불렸었다. 결코 오늘날의 공주의 백제 당시의 명칭인 웅진으로서의 지명으로 차용된 것이 아니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왕문도가 웅진도독으로 임명되었던 점을 깊게 추구하여 백제에 설치된 백제부성의 실체를 웅진도독부로 확정하였으며, 웅진도독부의 중요한 기구인 웅진도독을 역임했던 인물들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그 성격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웅진도독부는 당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었던 괴뢰정권이었음을 살펴보았다. 웅진도독을 역임한 인물로 왕문도, 유인원, 유인궤, 부여융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부여융만을 제외하고 모두 당나라 사람들이며, 부여융의 웅진도독 재임시절도 유진 장군의 직책을 지닌 유인원과 함께 지휘부를 구성하고 있어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This paper is aimed to proof where Ungjin-Dodokbu(熊津都督府) was and what was Ungjin-Dodokbu. Ungjin-Dodokbu was in Sabi(泗泌), Ungjin-Dodokbu was a puppet regime to be taken controll by Tang. Memorial stone for Yuinyeon(劉仁願紀功碑)was found in Sabi, Silla`s final objective was Sabi. These evidences prove Ungjin-Dodokbu was in Sabi. ZiZhi TongJian(資治通鑑) and ``Answer for Seolingyu``((薛仁貴書) was written in Ungjin Castle(熊津城), until now we know Ungjin-Dodokbu was in Ungjin. Ungjin Castle in these writings was an abbreviation for Ungjin-Dodokbu Castle. Tang considered Baekje as Ungjin, and Baekje symbolized Ungjin. What was Ungjin-Dodokbu? This is reviewed with Ungjin-Dodok. Wangmundo(王文度), Yuinyeon(劉仁願), Yuingae(劉仁軌), Puyeoyung(扶餘隆) were all Ungjin-Dodok. Only Puyeoyung was Baekje. The term ruled by Puyeoyung was very short. From start to finish Ungjin-Dodokbu was ruled Chinese Ungjin-Dodok. Main forces of Ungjin-Dodokbu were composed of Chinese troops. Thus Ungjin-Dodokbu was a puppet regime to be taken controll by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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