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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고대(古代) 일본(日本) 도성(都城) 공간(空間)에 있어 정원(庭園)의 성격(性格)에 관한 고찰(考察)

절회(節會) 장소(場所)의 분석(分析)을 중심으로

본 논고는 고대 일본 도성(都城) 공간에 있어 각 통치기에 절회(節會)의 장소가 어떻게 전개 또는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궁(宮)의 중추부를 구성하는 정원(庭園)의 성격과 의미를 해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논지를 전개해 나갔다. 고대 일본에서 절회는 천무(天武)·지통(持統)천황기에 1월 1일·1월 7일·1월 16일의 세 절회를 중심으로 성립하였으며, 701년 대보령(大寶令)이 실시된 이후에 궁정(宮廷)의례로 정착하였다. 절회의 장소는 통치시기에 따라 사용빈도에 차이는 있으나, 1월의 세 절회와 11월의 신상제(新嘗祭) 풍명절회(豊明節會)의 장소는 내리(內裏)(전전(前殿), 자신전(紫宸殿))와 조당원(朝堂院)(풍락원(豊樂院) 포함)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3월 3일·5월 5일·7월 7일의 각 절회는 내리(內裏)와 조당원(朝堂院)이 의장(儀場)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궁 안팎에 조영된 정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즉 성무(聖武)천황기 평성경(平城京)의 남원(南苑), 송림원(松林苑), 서지(西池), 환무(桓武)천황기 장강경(長岡京)의 도원(嶋院), 남원(南園), 차아(嵯峨)천황기 평안경(平安京)의 신천원(神泉苑)이 바로 그것이다. 나양(奈良)시대 성무천황기에 남원(南苑), 송림원(松林苑), 서지(西池)(궁(宮))가 절회의 장(場)으로 사용되었던 이유는, 정원의 경관이나 시설이 해당 절회의 성격과 부합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원을 포함한 보다 넓은 도성 공간을 절회의 場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성무천황의 통치이념에 있었다. 이와 같은 평성경 정원의 실태는 환무천황기 장강경의 도원(嶋院), 남원(南園)과 차아천황기 평안경의 신천원(神泉苑)에서도 엿볼 수 있다. 환무천황기에 장강경의 정원이 절회의 場으로 사용되었던 이유는, 다른 통치자들과는 차별화된 의장(儀場)을 선택함으로써 환무천황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황권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궁정의례와는 거리가 멀었던 초창기의 신천원이 차아천황기에 들어와 7월 7일 절회와 9월 9일 중양(重陽)의 場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이유는, 당풍(唐風)화를 지향하고 궁정의례를 정비하고자 했던 차아천황의 통치이념에 따른 결과였다. 즉 고대 일본 도성 공간에 조영된 정원은 다른 궁의 중추부와는 달리 통치자의 통치이념에 따라 그 사용형태가 다분히 유동적이었다.

This paper aims to clarify the character and the meaning of a garden constituting the nerve center of the shrine by considering how seasonal rites and banquets location was changed for each ruling period in the capital city(都城) of ancient japan. Seasonal rites and banquets were centered around three seasonal rites on January 1st, January 7th and January 16th in Emperor Tenmu & Jito period(天武·持統天皇期). These were established as the Imperial Court rites after Taihoryo(大寶令) in 701. Although Seasonal rites and banquets location was different with frequency of use, Dair(內裏) and Chodoin(朝堂院) were mainly used for three seasonal rites and banquets location in new year holidays and the Toyoaki(豊明節會) of Ninamesai(新嘗祭) in november. Dair(內裏) and Chodoin(朝堂院) were used for ceremonial sites on July 7, May 5, and March 3, but the gardens which was established the internal and external areas of the Palace were used as ceremonial sites. There were Nam-en(南苑), Shorin­en(松林苑), the Saiji〔­kyu (西池(宮)〕of the Heijo-kyo(平城京) in the Emperor Shomu Period(聖武천황기), Shimain(嶋院), Nanen(南園) of the Nagaoka-kyo(長岡京) in the Emperor Kanmu period(桓武天皇期), Shinsen-en(神泉苑)of the Heian-kyo(平安京)in the Emperor Saga period(嵯峨천황기). There was reason why a garden of the Heijo-kyo was used for as ceremonial sites for the Shomu emperor Period in the Nara(奈良) era. Because a scene and the facilities of the garden was related to the mark of the applicable seasonal rites and banquets. The most important reason was in a ruling idea of the Shomu emperor who was going to use a capital city widely as ceremonial sites. The situation of such the Heijo-kyo was seen at Shimain, Nanen of the Nagaoka-kyo in the Emperor Kanmu period, Shinsen-en of the Heian-kyo in the Emperor Saga period.Gardens of Nagaoka-kyo were used for as ceremonial sites for the Emperor Kanmu period to develop the position of the Emperor Kanmu, and the new royal authority which was different from other rulers. In addition, Shinsen-en was irrelevant to the Imperial Court rites in the incipient period but it was used as ceremonial sites and September 9, July 7 because of a ruling idea of the Emperor Saga who aimed at the Tang-way culture(唐風化). In other words, the garden of a capital city in the ancient japan was used diversely by the ruling idea of the ruler in contrast with the nerve center of other shrines.

I. 머리말

II. 節會場所의 展開와 變化樣相

III. 節會와庭園

I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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