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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부여 ‘자온대’ 전설의 형성 배경과 후대의 변이

Background of Legend of Jaondae (self-warmed flat stone) in Buyeo and its Transformed Meaning After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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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 즉, 부여읍 일대에는 백제사와 관련된 여러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이 글은 이들 전설 가운데 소위 자온대(自溫臺) 전설을 연구한 것이다. 이 글은 주로, 위 전설이 형성된 배경, 후대에 전설의 증거물이 바뀐 내력, 그리고 그에 따라 전설 내용도 변이된 과정 등에 주안을 두고 고찰하였다. 논술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비 도읍 시기 백제의 절로는 王興寺가 가장 중요하고도 중심이 되는 사찰이었다. 이 절은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지었고, 부처의 사리가 모셔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백마강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하여 위 절은 가장 성대하게 지은 왕궁의 원찰로서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시하고 가장 높이 경배하던 절이었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하여 위 절은 백제 임금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배를 타고 자주 행향예불을 하러 갔고, 예배를 하러 갈 때는 강을 건너기 전에 강가에 있는 넓은 바위에 올라가 절을 향하여 망배를 했다. 이러한 망배는 임금이 부처님 앞에 자신을 한껏 낮추는 행위이면서 부처님을 높이 공경하는 의미였다. 이 바위에 임금 몰래 신하가 불을 피운 것은 임금님을 모시는 신하로서의 정당한 보좌 행위였다. 그것은 신하로서의 지나친 아부행위라고 하기 어렵다. 겨울에 차가운 바위를 약간 덥게 하는 것은 임금을 안전하게 모셔야 하는 신하로서의 자연스런 행위라 할 수 있다. 위 전설은 처음에는 가벼운 궁중 일화로서 구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가 망하고 난 오래 뒤에 백제 임금에 대한 여론이 나빠짐에 따라 점점 부정적인 의미의 전설로 변이됨으로써, 불심이 깊은 임금이 놀기 좋아하는 임금으로 바뀌고 그를 모시는 측신은 아부를 잘 하는 신하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위 전설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어느 때에 전설의 증거물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구드래나루에 있던 넓은 바위였었는데(현재는 묻혀 있음) 전혀 다른 장소인 수북정(水北亭) 아래의 바위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고려 이후 증대되어온 부여에 대한 일반인의 관광 수요가 크게 작용하고, 일부 지역민들이 거기에 동조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조 이후 위 전설은 이렇게 변이된 내용으로 줄곧 구전되고 문자로 기록되어 왔다. 오늘까지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This paper is on a study of the legend of Jaondae handed down in the region of Buyeo, Chungnam.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summarized as below. First, Wangheungsa (temple) was the most important temple in its capital, Buyeo of Baekje dynasty. This temple with sacred relics of Buddha located across the river Baekma was built to pray for the repose of the passed prince. For those reasons, this temple was considered the most important and honorable in Baekje dynasty. Second, the king of Baekje often had gone to this temple to worship by boat. Whenever he went there he bowed to the direction of this temple on a large rock beside the river before going across. This act shows his humility and reverence for Buddha. Third, the fact that a loyal retainer built a fire behind the king`s back was a rightful act, neither flattery nor excessive loyalty. We regard warming a cold rock a bit in the winter as an obvious act for the safety of the king, not obsequious one. Fourth, the above legend might be formed as a light anecdote at Court. By the way, its meaning has been transformed to more and more negative manner as public sentiment about the king of Baekje was worsened long after Baekje dynasty perished. Fifth, the evidence of this legend changed at one point from the end of Goryeo dynasty and the early period of Choseon dynasty. The large rock at Guderaenaru (pier) was switched with the one under Subukjeong. This seems to have something to do with desire for tourism. Sixth, the above transformed legend has been orally transmitted and written since Choseon dynasty and still lasts until now.

Ⅰ. 머리말

Ⅱ. 자온대 전설 발생의 역사 배경

Ⅲ. 王興寺 예불(禮佛)의 의의와 자온대의 기능

Ⅳ. 자온대의 실체와 전설상의 자온대가 달라진 이유

Ⅴ. 위치가 바뀐 이후 자온대 전설의 변화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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