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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저항과 승리의 기호, 근대 민요

The Change and its Meaning of the Musical Styles of Modern Folk songs: A Steps of Change in the Musical Sign of Resistance and Trium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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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요는 현재 한국의 민속을 상징하는 노래로 혹은 한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로 간주되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후 반 사회에서 하층민의 “謠”가 20세기 이후 민속의 노래 혹은 민족의 노래로 인식되기까지는 몇 단계로 변화하는 절차를 거쳤다. 갑오 동학 혁명을 계기로 군중의 노래는 역사의 주체가 부르는 공적인 노래로 부상했다. 이후로 도시에 “잡조”도 “잡요(이요)”로 불리며 독립된 범주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대중 매체가 이를 주목하면서 “잡요(이요)”는 “잡가”로 불리면서 “가”의 지위에 도달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러한 음악 양식을 즐기는 근대적 주체, 도시적 주체의 성장을 의미했다. 그런데 도시적 주체의 성장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특히 3・1운동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근대화를 갈망했던 도시적 주체는 민족적 주제로서 자기 정체를 노래에 담고자 했다. 이에 적중한 것이 신민요였다. 그간의 음악 연구는 대체로 음고나 박자 같이 기보되기 유리한 것들을 중심으로 시도되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실연 되는 음악에 관심을 두고 음고나 박절 외에도 음색, 시김새, 창법 등등을 음악적 양식으로 포괄하여 분석해보았다. 이를 위해 1920년대에 소련의 음악학자 아사페브가 제안한 “음악적 억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되 그 논리적 공백은 1970년 대 이후에 문화 연구 및 음악 기호 연구의 성과로 보완하여 한국 근대 민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노래의 양식적 변화 와 그 의미의 변화가 정리될 수 있었다. “요”는 갑오년 이전까지 지방의 음악 양식으로 된 노동 공동체를 호출하는 지 역별 노래였거나 도시의 잡역부가 부르는 “잡조”에 불과했다. 그러나 갑오년 봉기 이후로 이러한 양식으로 된 동학가요는 동일한 이념과 노랫말 그리고 음악 형식을 공유하는 군중의 노래가 되었다. 즉 동학 가요는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민중을 기호화하는 노래가 되었다. 동학 가요의 확산 이후로 도시의 하층민의 “잡조” 역시 재해석되었다. 잡조는 이를 전담한 가수에게 불리면서 양식적 으로 변화되면서 “잡요(이요)”로 호명되었다. “잡요(이요)”가 독립된 범주로 인식된 이후 도시 문화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잡요의 지위는 다시 “잡가”라는, 즉 도시의 주도적 갈래로 상승했다. 잡조로부터 잡가까지의 상승은 이를 지지하는 도시적 주체의 성장을 의미했다. 그런데 3・1운동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면서 도시 대중은 민족적 주제로서 자기 정체를 기호화하고자 했다. 이에 전과 다른 양식, 즉 민요 양식을 중심으로 하되 여타 전통적 음악 양식과 서양의 그것을 절충한 신민요가 등장하여 민족이라는 새로운 이념, 통일된 공동체를 의미하는 새로운 음악 기호를 만들어냈다. 이상과 같은 변화는 기존 사회의 억압이나 한계를 뚫은 결과이기 때문에 근대 민요의 전개는 그 향유 주체의 저항과 적응 혹은 승리의 궤적을 기호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It is commonly considered that Korean urbanity is the product of Korean history and Japanese colonialism. The genres of Korean folk song in modern era, such as japga (雜歌) and sinminyo (新民謠), which are different from folk songs in ritual contexts, represent urbanity and articulate the Korean ethnicity with its musical style. The musical style, including mode, melody, form, and vocal timbre, functions as a signifier representing the Korean identity. The musical style, which articulates the subject who dominates it, means the special idea or thing in a specific epoch and province. This study utilizes the concept of musical intonation that the Russian musicologist Asafiev suggests as a signifier of meaning to communicate in a community. There are two urban styles of Korean folk song in modern era. The first was the traditional genre called japga, which was made of the established musical styles from various provinces of the Korean Peninsula. It was sung at theatres and in ordinary life among the urban people in the 1900s who came to be a subject in history since 1894 when broke out Gabo Reform (甲午改革) and Gabo Peasant Movement (甲午農民戰爭); the lower class sung donghak songs (東學 歌謠). Sinminyo was an eclecticized product of standardized popular genre japga and westernized Korean song changga (唱歌). There was an expectation for a genre that should have a typical Korean timbre and the traditional musical mode and on the other hand show a new, western style. Sinminyo appeared in the early 1930s and was loved by the citizen who had learned the nationalism after 1919. Since the end of the 19th century, japga was shared among ordinary people who enjoyed modern culture institutionally while sinminyo was demanded by the audiences who wanted to articulate their ethnicity with new musical style. Every song style has one’s own musical intonation which makes a meaning of their epoch. The musical style of Korean music as a signifier delivers the meaning of the Korean identity. It is similar to the voice of grain that R. Barthes mentions. Japga signifies the audience in urban society after the interpellation of people in history after the end of the 19th century, sinminyo articulates the Korean nationality with a new style eve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Ⅰ. 서론

Ⅱ. 아사페브의 억양론과 음악 양식의 사회문화적 의미

Ⅲ. 근대 민요 양식의 단계적 변화와 그 의미의 변화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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