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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연구 제82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거란과 고려의 保州 영유권 분쟁

The territorial dispute over Boju between Kitan and Goryeo

DOI : 10.18347/hufshis.2022.82.3
  • 318

10세기 중원에서는 宋, 만주에서는 契丹, 한반도에서는 高麗가 각각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 나라가 거란을 중심으로 국경이 접하면서 영토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요동에서는 발해영토였던 압록강 유역을 둘러싸고 거란과 고려가 전쟁과 외교전을 지루하게 펼쳤다. 거란의 聖宗이 즉위하면서 그의 동방 경략과 고려의 북방정책이 충돌했다. 마침내 거란은 고려를 침략했으며 이를 계기로 양국은 압록강을 경계 삼아 그 이남 지역은 고려의 영토로, 그 이북 지역은 거란의 영토로 하는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거란은 외교적 명분을 저버리고 이미 할양했던 保州에 대해 계속 실효적 지배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강동 6주를 전부 돌려달라고 재차 침략했다. 보주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지역으로 요동과 한반도를 잇는 咽喉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군사적 요충지이자 중요한 교통 및 교역의 거점이기 때문에 고려도 양보할 수 없었다. 고려는 보주에 세운 거란의 각종 시설을 여러 차례 파기하라고 항의했고 더 나아가 그곳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보주를 꼭 쟁취해야만 했으나 군사력이 미약하여 보주를 강제로 탈환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진이 발흥하여 금을 건국하였고, 금군의 맹렬한 공세로 거란이 위급하게 되었으므로 고려는 보주를 다시 찾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고려는 물리적인 수단보다는 외교적 수단을 이용하여 거란과 금에 타협하였다. 거란이 군사를 철수하면서 내원성과 보주를 고려에 인도하였고 금군에 앞서 입성하였다. 고려는 자신들의 소유권을 금이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은 사대의 대가로 고려의 소유권을 인정하였고 마침내 보주를 고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이처럼 고려는 거란과 여진에 칭신함으로써 강동 6주와 보주를 얻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 외교는 당시의 국제적 관례였다. 그들이 동북아의 패권국이 된 이상 고려의 실리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었다. 고려는 영토를 획득하고 양국 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전쟁을 최소화했으며 이는 고려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In the 10th century, Song in China, Kitan in Manchuria, and Goryeo in the Korean Peninsula were unified. However, territorial disputes frequently occurred as the three countries faced each other with borders centered on Kitan. In Liaodong, Kitan and Goryeo fought wars and diplomatic battles boringly over the Yalu River basin, which was Balhae‘s territory. With the accession of the sixth emperor(聖宗), his Eastern policy and Goryeo's northern policy clashed. Eventually, the Kitan invaded Goryeo, and with this opportunity, the two countries signed an agreement to make the southern part of the Yalu River a territory of Goryeo and the northern part a territory of Kitan. However, not only did he abandon his diplomatic cause and maintain effective control over the already ceded Boju(保州), but he also invaded again to return all six Gangdong states(江東六州). Boju is an area located in the lower reaches of the Yalu River and corresponds to the throat connecting Liaodong and the Korean Peninsula. Goryeo could not yield because it was a military hub and an important transportation and trade hub. Goryeo protested several times to destroy various facilities of Kitan built in Boju and further asked for the return of the site, but failed to achieve its intention. Goryeo had to win Boju on a strategic level, but it was not able to forcibly recapture Boju due to its weak military power. In such a situation, Jurchen rose and founded the Jin Dynasty, and due to the fierce offensive of the Jin, Kitan was in danger, so Goryeo had a chance to acquire Boju again. Goryeo used diplomatic means rather than physical means to compromise with Kitan and Jin. When Kitan withdrew his troops, delivered Naewonseong Fortress(來遠城) and Boju to Goryeo. Goryeo occupied Boju before the Jin's army and asked the Jin Dynasty to recognize their ownership. Jin Dynasty recognized the ownership of Goryeo in return for subservience to the stronger. Finally incorporated Boju into Goryeo's territory. In this way, Goryeo obtained six weeks of Gangdong and Boju by serve Kitan and Yeojin. Subservience to the stronger, in which a small country serves a large country, were international practices at the time. As long as they became a hegemonic power in Northeast Asia, it was a practical option for Goryeo. Goryeo acquired territory and maintained friendly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o minimize the war, which created favorable conditions for the development of Goryeo.

Ⅰ. 머리말

Ⅱ. 보주의 영유권

Ⅲ. 거란의 보주영역

Ⅳ. 고려의 보주수복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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