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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정신분산 가능성 시대의 VR과 경험의 ‘구체화’

스크린/이미지의 변화된 위상

근래 들어 비약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VR 작업들을 관통하는 공통점들 중 하나는, 거기에 엄격하게 영화적인 의미에서 ‘클로즈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파트타임스위트, 2016)나 <동두천>(김진아, 2017), <새 여인>(권하윤, 2017)과 같은 최근의 한국 작업들은 물론 <울트라맨 제로 VR>(타구치 키요타카, 2017) 같은 일본의 특촬물 VR에도 공히 적용되는 특징이다. 클로즈업으로 찍힌 장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VR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광대한 시각장 속에서 언제고 무력화 될 수 있다. 이는 VR을 영화로부터 떼어놓는 흥미로운 차이점 중 하나이면서, 360도 시각장의 ‘본질적 부산물(essential by-product)'이다. VR의 경험이 정신집중보다는 그것의 분산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기계복제가능성의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이 주목했던 영화와 건축 간의 공통점을 환기시킨다. 건축을 정신분산 속에서 수용되는 예술작품의 원형으로 소환하면서, 벤야민은 건축물의 수용이 촉각과 시각을 통해 이뤄진다고, 더 정확하게는 건축의 시각적 수용은 촉각적 지각의 특징인 “무심코 이뤄지는 주목 einem beiläufigen Bemerken”을 경유해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정신집중의 분산 가능성’은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오손 웰스의 작업에서 인상적으로 사용된 딥 포커스를 ‘단일 포커스의 부재‘라는 맥락에서 “민주적”이라 평가했던 것과 역설적으로 공명하며, 이를 통해 VR과 건축, 영화간의 공명을 두텁게 만든다. VR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촉각성과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그것의 매체적 함의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의 스크린에서 우리가 손가락으로 만지고 누르는 이미지들은 더이상 전통적 의미에서의 ’시각적 재현물’로 기능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의 근본적 기능과 존재 이유는 더 이상 시각적으로 향유되거나 평가되는 데 있지 않다. 다른 기능과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다른 링크, 다른 차원으로 우리를 넘겨주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것은 하룬 파로키가 ‘작동 이미지 operational image'라고 불렀던 것에 가깝다. 이미지가 시각적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작동하는 이미지’와 겹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으로, 즉 어떤 결과와 효과를 산출하는 과정의 일부로 기능한다면, 그때 이미지란 소위 현실의 ‘실체’ 혹은 ‘물질’과 어떠한 차이를 갖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VR과 체험의 ‘구체화(concretization/sphericalization)’간의 선택적 유사성을 살펴볼 것이다. 약 3미터 정도의 텅 빈 구체에 사용자가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진 버추스피어(VirtuSphere)는 대개 헤드마운트 기어를 통해 시각적인 차원에서만 구현되던 감각의 장을 말 그대로 전면화한다. 여기서 현실과 VR의 경계는 뒤샹의 표현을 빌면 지극히 얇은(Infra-mince/infra-thin) 막을 경계로 간신히 구분되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단톡방’, 혹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 불리며 알고리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사회연결망서비스의 내재적 한계와 환상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구동희의 2016년 싱글채널 영상 작업인 <cross x pollination>는 ‘만질 수 있는 스크린’을 통해 제시되는 두 가지의 구분 불가능한 이미지들을 평평한 2차원 영상으로만 역으로 제시함으로써, 허쉬혼의 <Touching Reality>와 제프리 쇼(Jeffrey Shaw)가 1960년대 중후반부터 변주해온 ‘육체영화(Corpocinema)' 프로젝트의 궤적이 천착한 아방가르드의 문제의식과도 접속된다.

One of the commonalities of VR works whose visibility is increasingly on the rise is the lack of close-up, in its rigorously cinematic sense of the term. When they appear, close-ups are strictly subject to neutralization in the midst of the VR‘s vast visual field. One of the essential by-products of the 360 degree visual field of VR, it constitutes one of the intriguing differences whereby VR is detached from cinema. That VR experience is possible less in the state of concentration than in distraction evokes the common ground between cinema and architecture, as noted by Walter Benjamin. Benjamin notes that visual reception of architecture operates via “casual noticing [einem beiläufigen Bemerken],” a feature, he adds, of tactile perception. Interestingly enough, this ‘distractibility of concentration’ paradoxically resonates with what Andre Bazin deemed as “democratic” in Orson Welles’s use of ‘deep focus’ in terms of ‘the lack of dominant focus,’ and thereby further enriches the resonance between VR, architecture and cinema. Another issue of VR concerns the relationship between tactility and image since images we touch and press on our smartphones and iPad’s screens do not function as ‘visual representation.’ In a sense that they render other programs operative, and carry us to another link and dimension, they are closer to what Harun Farocki called ‘operational image.’ Lastly, there is the issue of selective affinities between VR and concretization or sphericalization of experience. The distinction between reality and VR is strenuously maintained by what Duchamp called an ‘infra-thin’ membrane, forcefully evoking the so-called ‘filter bubble,’ an algorithm-bound effect of SNS as well as its intrinsic limits and fantasy.

Ⅰ. 산만한 수용, 혹은 정신분산 가능성 시대의 VR

Ⅱ. VR과 터치스크린: 이미지의 위상

Ⅲ. 경험의 '구체화': VR과 <cross x pollination>(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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