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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漢文學硏究 第62輯.jpg
KCI등재 학술저널

20세기 漢詩의 모험

The Adventures of Sino-Korean Poetry in 20th Century Korea

DOI : 10.35374/dyha.62..202206.009
  • 136

갑오개혁 시기에 과거제가 폐지된 이후 한문학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한문학의 여파는 20세기 들어서도 상당이 이어졌다. 백일장과 模擬 科擧 大會가 심심치 않게 개최되었고, 출판사가 중심이 되어 독자 투고를 받아 회비를 낸 회원들에게 동인지를 발간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까지도 한시협회가 존재하며 동인지를 발간하는 실정이다. 다만, 21세기의 한시 창작은 단순한 好古 취미라고 단정지을 수 있어도, 20세기 중반까지는 그 양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에 등장한 한시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上海 虹口公園 義擧의 주인공인 梅軒 尹奉吉,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다가 일제의 날조로 만들어낸, 이른바 ‘조선어 학회 사건’의 한가운데 있었던 고루 李克魯,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虞南 李承晩이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지었던 한시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려 한다. 세 분 모두 현대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분들로, 뒤의 두 분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褒貶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어도, 그 역사적 비중까지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헌은 의거 이틀 전 현장을 답사하고 돌아와 白凡 金九에게 자신의 이력서와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와 함께 백범의 義氣를 찬양하는 한시를 올렸다. 고루는 한글 운동에 헌신한 것이 빌미가 되어 감옥에 갇혔어도 자신의 심정을 읊은 작품을 지을 때는 한시를 선택했다. 또 우남은 소년 시절을 온통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보냈었다.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재빨리 신학문을 배웠고,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出仕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모종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상당 기간 수감생활을 하였는데, 옥중에서 다수의 한시 작품을 남긴 바 있다. 4·19로 하야하고 하와이에 망명한 뒤에는 젊은 시절에 지은 이 작품들을 한학자에게 국역시켜 자신의 순결한 젊은 시절을 증명하려 하였다. 세 분 모두 한문학 전통의 주류에서는 한발 비껴 있던 분들임에도,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체로 한시를 선택한 것은 한시가 그때까지 일종의 ‘문화자본’으로서 기능하고 있기에 가능했었던 일로 생각된다. 이 점을 조금 더 보충하기 위해, 본론의 뒷부분에서 6·25가 한창일 때 간행된 『地方行政』이라는 잡지에 실린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가 지은 한시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였다.

This paper attempts to prove that Sino-Korean poetr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as a cultural capital by examining the works of people who occupy important positions in Korean modern history at decisive moments. Yun Bonggil(尹奉吉, 1908~1932) is a patriot who changed the flow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by throwing a bomb at Hongkou Park(虹口公園) in Shanghai. He wrote a Sino-Korean poem for his leader, Kim Gu(金九, 1876~1949), two days before the event. Lee Keukro(李克魯, 1893~1978), the leader of The Korean Language Society, was tried and imprisoned because he raised national consciousness by compiling a Korean dictionary. But He expressed the pain of imprisonment in prison and his unyielding spirit by Sino-Korean poetry. Rhee Syngman(李承晩, 1875~1965), the first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able to become a civil servant by learning English and Western studies. But even after obtaining a doctorate through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he always enjoyed writing Sino-Korean poetry. Finally, we looked at the Sino-Korean poems of the President, the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the Prime Minister, and the Chief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published in the magazine 『Local Administration(地方行政)』 which was published for civil servants despite the Korean War.

1. 들어가며

2.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과 漢詩

3.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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