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성종대 왕실문화의 정립 과정이 왕권 강화 의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이 과정에서 창작된 관각산문을 통해 관각문학의 勸戒的 역할과 諷諫의 글쓰기 방식을 분석한 것이다. 성종은 특별한 왕위 계승 과정으로 인해 나름의 방식으로 왕실 내부 기강을 정립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신료들은 왕실문화를 공론의 장으로 포섭하는 가운데 계층성을 강조하는 성종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 규범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대립과 조율의 과정이 관각산문의 안팎에 반영되어 있다. 먼저, 성종 즉위 초기에 왕실은 后妃의 정치 참여를 嚴禁하고 모범적 선례를 따를 것을 강조하는 『后妃明鑑』 찬술 등의 활동을 통해 규범성에 대한 자발적 준수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신료들은 왕실의 의지에 대한 예찬과 성종에 대한 기대감을 관각산문에 담아냈다. 그러나 친정 직전, 성종은 私親을 추숭하는 방식으로 혈통의 위계를 드높이려 하면서 그 의례적 부당성을 논하는 신료들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관각문인들은 私家의 모범으로써 왕실이 견지해야 할 규범성을 우회적으로 환기하는 방식을 통해 성종을 규계하였다. 둘째, 창경궁 낙성을 전후한 시기 왕실은 宦官을 둘러싼 내홍을 겪고 있었다. 성종은 친왕 세력 확보 및 군왕의 인사권 등 계층적 우위를 앞세워 신료들의 제동에 불만을 토로하고, 이 문제를 에둘러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성종의 명을 받은 金宗直은 사건의 당사자인 환관을 대상으로 직설적 경계의 의도를 담은 관각산문을 찬술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계층적 질서의 최상위자이자 왕실 내부의 구성원들을 완벽하게 제어해야 하는 존재로서 군왕이 관련 문제를 누구보다도 심절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관각문인들은 규범성과 계층성의 구심점인 군왕을 대상으로, 사적 영역에서 보여주어야 할 행동규범을 제시하였다. 「環翠亭記」의 작가들은 군왕의 현실적 입장을 일정 부분 존중하는 가운데 긴장이 완화되는 사적 영역에서도 마음을 다잡아야 함을 풍간의 방식으로 피력하였다. 아유나 찬미에 그치지 않고, 의사소통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종의 성격을 고려하되 自淨의 정치적 의도를 사수하기 위해 고심한 관각의 글쓰기 방식이 새롭게 주목된다.
Assuming that the process of establishing royal culture under King Seongjong's reign is related to the intention to strengthen royal authority, this study analyzed the admonish role of Gwan-gak literature and the way of writing skills. King Seongjong tried to increase his authority by newly establishing discipline within the royal family due to the special process of succession to the throne. In response, the officials put the brakes on King Seongjong's method of managing state affairs, which emphasizes hierarchicality, by embracing royal culture as an area of public opinion. The process of confrontation and coordination is well contained in Gwan-gak literature. First,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the royal members such as the queen strictly prohibited from participating in politics and showed their willingness to comply with norms by following exemplary examples. So, the officials expressed their expectations and admiration for the regime in their writings. However, King Seongjong tried to raise the hierarchy of his own lineage by promoting his biological father to king. The officials strongly protested on the basis of the ritual injustice. Accordingly, the writers of Gwan-gak literature disciplined King Seongjong by indirectly evoking the normative nature that the royal family should maintain as an example of a general family. Second, when Changgyeong Palace(昌慶宮) was completed, King Seongjong was suffering from internal feuds caused by eunuchs. He complained about the opposition of the officials with the hierarchical advantage of the king, and instead chose to solve this problem indirectly. Accordingly, Kim Jong-jik(金宗直), who received the royal order, wrote a direct and strict warning against eunuchs. However, behind it, it can be seen that the king, the top of the hierarchical order, contained a message of vigilance that requires complete control of royal members. Third, the officials presented the norms of behavior that he should show in the private domain, targeting wages, which is the center point of normativity and hierarchy. The writers of 「Hwanchwijeonggi(環翠亭記)」 respected the realistic position of the king to a certain extent. And at the same time, they insinuated the king to hold his heart firm even in a private space where tensions were eased. The writers of Gwan-gak Literature were well aware of the sensitive nature of King Seongjong, which was show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royal culture. Thus, it showed the voice of self-purification that delicately achieved their political purpose of advising the king as a moral norm.
1. 公私가 중첩되는 공간, 성종대의 왕실
2. 규범성의 강조와 변화의 조짐: 親政을 전후한 시기
3. 계층성의 강조와 이면의 소리: 창경궁 낙성을 전후한 시기
4. 규범성·계층성의 구심점: 사적 영역 속 군왕의 자세
5. 결론을 대신하여: 自淨의 목소리로서의 관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