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불교학연구 제71호.jpg
KCI우수등재 학술저널

무실라(Musīla)와 나라다(Nārada)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상징인가.

Are Musīla and Nārada Symbols of Rationalism and Mysticism?

「꼬삼비숫따(Kosambisutta)」의 무실라와 나라다는 열반에 이르는 길로서 지혜와 선정이라는 두 가지 수행체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무실라는 지혜에 의해 아라한이 되었고 나라다는 선정의 최상의 상태인 열반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전에서 두 인물은 동일하게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꼬삼비숫따」 자체의 맥락과 주석서의 해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무실라와 나라다가 동일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은 사윗타가 이들에게 한 질문이 유학들도 충분히 갖출 수 있는 지혜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에 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혜는 그 깊이와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아라한과 유학이라는 서로 다른 성자의 계위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라다는 ‘아라한의 경지로서의 열반’을 뜻하는 ‘물’에 ‘몸으로 닿을 수 없다’는 비유를 통해, 자신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의 체득에는 이르지 못한 유학의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경전이 나라다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지혜와 대비되는 선정이라는 한 수행체계가 아니라, 지혜의 체득에 의해서 비로소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경전의 내용을 통해서 순수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둘 다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무실라는 물을 경험했기에 아라한이고 나라다는 그렇지 않기에 아직 유학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본고에서 고찰했듯이 그 물이 아라한의 경지로서의 열반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체험하기 위한 방법론에 관한 문제는 이와는 별도의 논의가 될 것이다.

ambisutta, symbolize the two practices of paññā and jhāna as the path to nibbāna. Since the study of Vallée Poussin, who regarded Musīla and Nārada as representatives of rationalism and mysticism, these two figures have been frequently mentioned in studies dealing with paññā and jhāna, and in particular, Nārada’s metaphor has been cited as the basis for showing the indispensability of jhāna for enlightenment. In this paper, in order to clarify what these figures symbolize, I first examine the contents of Kosambisutta and the meaning of Nārada’s metaphor. Next, I review the opinions of Ray, who saw Musīla and Nārada as representing the ubhatobhāgavimutta and paññāvimutta, respectively. Since sekhas also possess the knowledge of paṭiccasamuppāda and nibbāna, Saviṭṭha’s questions to them are not appropriate for judging whether they are arahants. Nārada declares that he is not an arahant even though he possesses this kind of wisdom through the “metaphor of water.” Here, the meaning of water is nibbāna as the state of the arahantship, which has ceased the form of rebirth (bhava). Therefore, “knowing that there is water, but you cannot touch yourself to the water” means that one knows that nibbāna exists, but has not yet attained it—that is, one has not yet become an arahant because one has only the paññā of a sekha. Ray regards these figures as representing the ubhatobhāgavimutta, who needs both paññā and jhāna for enlightenment and the paññāvimutta, who is liberated by only paññā. However, it cannot be asserted that a paññāvimutta lacks jhāna, and if this is right, this Ray’s view cannot be accepted because, even though Nārada has not attained jhāna, he must be a paññāvimutta by his paññā, the same as Musīla, an arahant.

Ⅰ. 들어가는 말

Ⅱ. 「꼬삼비숫따」의 내용과 나라다의 비유

Ⅲ. 나라다와 무실라는 양면해탈자와 혜해탈자를 나타내는가

Ⅳ. 나가는 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