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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융합 제6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민족사학계의 ‘고대요수(遼水)’와 ‘패수(浿水)’ 위치비정 비교

리지린과 윤내현 학설 비교를 중심으로

고조선 연구에서 ‘고대요수(遼水)’와 ‘패수(浿水)’의 위치 비정 문제는 고조선말기에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고조선 서쪽 강역(疆域)이 어디였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이것은 곧 한(漢)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했다고 하는 한사군의 위치와 관계된 것이기도 해서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기존의 한국 고조선 연구 국사학계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 하는 목적으로 만든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고대요수(遼水)’와 ‘패수(浿水)’에 대해 위치 비정한 것을 아무런 의심 검토 논증 없이 그대로 계승해 왔다. 예를 들면, 일본 제국주의 사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압록강을 ‘패수’로 비정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内宏)의 가르침을 받고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과 함께 근무했던 이병도는 이들의 논리를 계승했는데, ‘패수’에 대해서는 한 걸음 더 한반도로들어와서 ‘청천강’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식민사학이 청산 되지 않았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 사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식민사학계와는 다르게 신채호와 정인보에게 영향을 받아 논지를 전개한 쪽을 ‘민족사학계’라고 하는데, 현재 민족사학계 고조선 연구 분야에서 남한과 북한을 대표할 수 있는 학자는 각 각 리지린과 윤내현이라고 볼 수 있다. 리지린과 윤내현 두 학자 모두 ‘고대요수’는 오늘의 ‘요하’가 아니고, 오늘의 ‘난하(滦河)’라고 주장한다. 두 학자는 ‘난하’가 ‘고대요수’라는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 기록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때 리지린과 윤내현이 제시하는문헌 기록들은 거의 비슷하며,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패수’를 비정하는 부분에서 두 학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패수’는 중국과 고조선의 국경 지역에서 자연경계가 되어 국경선 역할을 하는 강을 말하는데, 고대 한국어에서 ‘펴라’, ‘피라’, ‘벌라’ 등으로 발음되었던 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를 중국식 향찰로 표기한 것이다. 리지린은 오늘의 ‘대릉하’를 ‘패수’로 보았고, 윤내현은 오늘의 ‘난하’ 또는 ‘난하 보다 더 서쪽에 있는 강’이거나 ‘난하 보다 더 서쪽에 있는 난하의 지류’로 보았다. 한편, 신채호, 정인보, 리지린, 윤내현으로 이어지는 민족사학계는 최근에는‘고대요수’가 오늘의 ‘난하’가 아니라 북경 인근을 흐르는 ‘조백신하’라는 견해와 보정시를 흐르는 ‘당하’라는 견해, ‘거마하’라는 견해도 제출되고 있다. 리지린 윤내현이 ‘고대요수’는 오늘의 ‘난하’라고 주장하면서 인용했던 역도원의 『수경주(水經注)』는 원문인 『수경(水經)』에 나온 강의 흐름을 원문과 다르게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료로서의 객관적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황순종의 견해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황순종은 역도원의 『수경주(水 經注)』를 인용하여 열수=유수=난하라고 전개하던 논리가 원문 『수경(水經)』에의하면 열수는 유수가 아니고 유수는 난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을지적했다. 이러한 황순종의 견해와 심백강, 김봉렬, 장우순, 문치웅, 황순종에 의하면최근 민족사학계 연구 결과는 최소한 중국의 전국시대, 진(秦), 전한(前漢)시기에 살았던 당시 중국인들의 활동범위는 지금의 북경시 부근이거나 혹은 북경시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 연구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난하’가 ‘요수’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는 중국에 ‘요(遼)’나라가 성립했던 시기였을 수 있고, 지금의 ‘요하’가 있는 ‘요동’은 명(明), 청(淸) 시대에 생겨난 것으로볼 수 있다. 따라서 한사군이 설치되던 서기전 1세기경의 ‘요수’에 대해서는 리지린 윤내현의 ‘고대요수는 오늘의 난하’라는 견해 보다는 심백강, 김봉렬, 장우순, 문치웅, 황순종의 견해를 더 종합적으로 적극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In the study of ‘the ancient old Joseon(we call it Gojoseon), the problem of estimating the position of ‘the ancient Yosu(遼水)’ and ‘the Passu(浿水)’ shows where the western boundary of Gojoseon, which was bordering China at the end of the Gojoseon period, was. The issue is also a matter of contention as it relates to the location of ‘Four Commanderies of Han’ that the Han Dynasty installed on the site after the collapse of the Wimanjoseon(衛滿朝鮮). Korea’s Gojoseon research and history scholars’ have inherited without any doubt Japan’s setting up of the location for ‘the ancient Yosu(遼水)’ and ‘the Passu(浿水)’ in Korea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under Japanese Goverment General of Korea, which was created to justify its invasion of Korea. For example, Japanese imperialist historians Shiratori Kurakichi and Tsuda Sokichi made ‘the Amnok River’ a ‘the Passu(浿水)’. Lee Byung-do, who worked with Inaba Iwakichi and Imanishi Liu at Korea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and who was taught by Tsuda Sokichi and Hiroshi Ikeuchi, inherited their logic. Lee Byung-do then took a step further into the Korean Peninsula and claimed that ‘the Passu(浿水)’ was ‘the Cheongcheon River’. His pupil, Roh Tae-don, also claimed that ‘the Passu(浿 水)’ was the ‘the Cheongcheon River’. This theory is the narrowest view of the land of Gojoseon among all the theories submitted. As such, the claim by Korean disciples of Japanese imperialism historians is criticized as colonialism because the location of ‘the ancient Yosu(遼水)’ and ‘the Passu(浿水)’ is related to the ‘national territory’ of Gojoseon. As a result, there is a controversy that the colonialism Korean history has not yet been liquidated. Unlike the colonialism historians who received the legacy of Japanese imperialist historians, it is said that the anti-colonial ethnic history academia developed the study under the influence of the independence activist and historian Shin Chae-ho and Chung In-bo. The scholars who can represent the South and the North in the field of Gojoseon research in the current ethnic history circle can be called Lee ji-lin and Yoon Nae-hyun. Both scholars, Lee Ji-lin and Yoon Nae-hyun, argue that ‘the ancient Yosu(遼 水)’ is not today’s ‘Yoha(Liaohe River)’ but today’s ‘Nanha(Luanhe River)’. To prove it, two scholars present it on the basis of the various ancient historical records. At this time, the ancient historical records presented by Lee Ji-lin and Yoon Nae-hyun are almost identical, and are not much different each other. However, the two scholars disagree on the location of ‘Passu(浿水)’. Lee Jirin argued today’s ‘Daereungha(Daling River)’ a ‘Passu(浿水)’. But Yoon Naehyun insisted that today’s ‘Nanha(Luanhe River)’, ‘a river flowing westward beyond Nanha(Luanhe River)’ or ‘a tributary of Nanha(Luanhe River) to the west beyond Nanha(Luanhe River)’ are ‘Passu(浿水)’. Meanwhile, recent the anti-colonialism ethnic historians learned from Shin Chae-ho, Chung In-bo, Lee Ji-rin and Yoon Nae-hyun express the new view that the ‘Chao Bai Xin River’ that flows through the suburbs of Beijing, not today’s Nanha(Luanhe River),is ‘the ancient Yosu(遼水)’. Other anti-colonialism ethnic historians argue that ‘Dangha(Tanghe)’ or ‘Komaha(Jumahe)’ that flows through Baoding City are also likely to be ‘the ancient Yosu(遼水)’. One of among recent the anti-colonialism ethnic historians, Hwang Soonjong points out that there is a problem with Lee Ji-rin and Yoon Nae-hyun’s claim to ‘the ancient Yosu(遼水) is today’s Nanha(Luanhe River)’ based on 『Su Kyong-ju(水經注)』. Hwang Sun-jong explains that 『Su Kyong-ju(水經注)』 is a book written by Ruan Yuan(酈道元) of the Northern Wei, which arbitrarily distorts the flow of the river in the original 『Suyeong(水經)』. The theories

1. 머리말

2. 리지린과 윤내현의 같은 결론..요수(遼水)는 난하(灤河) 그러나 서로 다른 접근과정

3. 리지린과 윤내현의 서로 다른 패수(浿水)...결론이 다른 이유

4. 신채호 정인보 리지린의 한계와 윤내현의 비판적 계승

5. 리지린 윤내현을 비판하는 민족사학계의 다른 견해들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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