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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융합 제5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광개토태왕릉비에 나타난 왜(倭)와 임나(任那)의 실체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하여

이 이 글은 광개토태왕릉비의 비문 내용을 분석하여 왜(倭)와 임나(任那)의 실체를 밝혀 일본측이 주장해온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 경영했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광개토태왕릉비는 장수왕 3년(AD 414)에 건립된 동북아시아에서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비이다. 그러나 이 비는 청(淸)의 출입금지조치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1884년(광도 10년) 일본 정보장교(酒勾景信)가 이 비를 발견하여 본국에 탁본을 보냈고, 일본 군부 세력은 비밀리에 이를 연구하였다. 일본이 주목한 곳은 비문중의 이른바 신묘년조 기사(而倭以辛卯~新羅以爲臣民)이다. 즉 이 구절을 “일본이 신묘년(AD 391)에 바다를 건너가 백제와 신라를 파(破)하고 그들을 신민(臣民)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여 공개(1889년)했다. 이런 해석의 의도는 일본이 조선을 다시 지배하려는 논리를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정인보는 일본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생략된 주어가 고구려이기 때문에 고구려가 일본을 파(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신묘년조 기사 중에 이왜이(而倭以)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국내 소장본인 구로다(黑田正雄) 탁본(1876)과 프랑스 ‘샤반느 탁본’(Chavannes·1907)을 통해 판본상 변조된 글자와 빠진 글자의 새로운 보결(補缺)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당시의 왜는 북규수(北九州) 일대의 해적떼이며, 비문상의 주어는 왜(倭;而倭以)자가 아니고, 제(帝;而帝以)자이며, 제(帝)는 곧 광개토태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임나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열도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여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임을 밝혔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analyze the inscriptions of the epitaph of the Great King Gwanggaeto and reveal the substance of ‘Japanese people(倭)’ and ‘Imna(任那)’, and to prove through this fact that The hypothesis of ‘Imnailbonbu’(Japan's claim to have ruled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is false. The Great King Gwanggaeto tombstone is the oldest and largest monument in Northeast Asia, which was built in the 3rd year of King Jangsu(AD414). However, this monument was not known to the world by the Qing Dynasty’s ‘No Entry policy’. Then in 1884(the 10th year of Kwangdo), a Japanese intelligence officer(酒勾景信) discovered this tombstone and sent a copy of the epitaph to Japan. This was secretly studied by the Japanese military. They especially noted the so-called “Sinmyonyeonjo”(而倭以辛卯~新羅以爲臣民), the article of this inscription. They misinterpreted this article as “The Japanese crossed the sea in the year of ”Sinmyo”(AD391). And they attacked Baekje and Silla, and made these two countries’ people as their servants”. Then they released the inscription to the world in 1889. The main reason for this mistranslation was to make the justification for the occupation of Joseon. In response, Jeong In-bo pointed out that there was a problem with the interpretation. The omitted subject from the sentence was “Koguryeo,” so he insisted that Goguryeo attacked Japan. I thought that basically, there was a problem with ‘ i-wae-i(而倭以)’ in “Sinmyonyeonjo”. So I tried to make a new complement to the forged or omitted texts with the ‘Kuroda(黑田正雄) rubbed copy’ of a domestic collection(1876) and the ‘Chavannes rubbed copy(1907)’ of a French collection. As a result, it was revealed that the ‘Japanese people(倭)’ was a group of pirates in the North Kyusu region(北九州), and the subject of the inscriptions was not ‘Japanese people(倭;而倭以)’, but ‘Je(帝;而帝以)’. Therefore it was concluded that ‘Je(帝)’ should be regarded as King Gwanggaeto. Besides, I revealed that the ‘Imnailbonbu(任那日本府)’ was a fabrication by proving the fact that Imna was in the Japanese Islands, not in the Koran Peninsula.

1. 문제 제기

2. 비문 연구로 본 왜에 대한 논쟁

3. 신묘년조 기사의 재해석과 왜의 실체

4. 경자년조 기사의 임나가라와 분국설에 의한 임나의 실체

5. 결론:일제의 한반도 임나일본부설은 거짓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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