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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융합 제5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일본 근대 역사학 형성

식민사관과 랑케 실증주의 사학

일본제국은 랑케 실증주의 사학을 수용하면서 랑케가 『강국론』에서 설명한 프로이센처럼 강국의 조건으로 민족의 통합과 국민의 애국적 정신, 즉 ‘도덕적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오랫동안 지방 세력들에 의해 분열되어 온 일본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통합이 국가의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한 랑케의 『강국론』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확장하려 한 일본제국의 정책에 부합한 역사 논리였다. 특히 랑케는 강국이 약소국을 지배하고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힘에만 의존하기보다 보편적인 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 점에 주목한 일제 역사가들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보편적 원리를 창안해 내는 데 주력했다. 제국주의 정치와 문화는 식민지 사람들을 미개한 종족으로 인식하여 이들을 개화시키기 위해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제국주의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종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는 무엇보다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일본제국은 첫째, 일제는 제국의 패권을 확장하고 조선 식민화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조선 민족의 역사를 미성숙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조선이 문화적으로 중국 등 강국에 종속된 열등한 민족이고 또한 역사적 발전과정도 겪지 못했다고 주장하게 이르렀다. 일제가 조선의 우수한 역사의 발전단계를 인정하지 않고 아예 역사적 사실에서 제외시키거나 혹은 사실을 왜곡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둘째, 일제는 한반도가 고대로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고대사를 왜곡해야 했다. 특히 조선의 식민통치를 존속하기 위해서는 정치원리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일제는 ‘황국신민화’ 정책이나 혹은 ‘내선일체’, ‘대동아 공영’ 그리고 ‘신사참배’라는 정치적, 종교적 원리를 통해 식민지배정책을 확대시켜 나갔다. 이렇게 일제 역사가들은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의 개념을 제국주의 논리에 맞게 변형하여 이를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와 태평양 등 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의 확대정책을 위한 역사적 근거로 삼았다. 결국 왜곡된 랑케 실증주의 사학의 역사관은제국주의의 이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세계를 바라보는 역사 인식 속에 수용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제식 실증주의 사학’ 이며 식민사관의 본질이다.

This article is a study on the formation of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by historians of Imperial Japan. When The Imperial Japan accepted Ranke’s Empirical History, they had recognized to be necessary the Ethical energy as a condition of strong country like Prussia, as Ranke mentioned in『Die großen Mächte』and『Politisches Gespräch』. For long time, in historical situation of Japan that had been divided by local influences, Ranke had stressed That the combination of nations was a source of country power in『Die großen Mächte, it had a historical reasoning, so, this had coincided with imperial policy of Japan that had wanted to extend the hegemony. Ranke argued that strong country had to make an universal principle for a ruling a small and weak nation, not to rely on only power of country. So, Historians of Imperial Japan devoted themselves to make an universal principle to rule Chosun. The Imperial politics and culture has been based on the reason that the colonization was just, because Imperialism considered colonial people as an uncivilized race. Like this, The Imperialism basted on a culture and a historical sense of one´s superiority had got hung on a racial prejudice. Therefor, Imperial Japan had to created a wrong history that the history of Chosun had been undeveloped for a justification of the colonization of Chosun. And Imperial Japan had mentioned that Chosun had not a historical development and culturally, was a inferior nation to be subordinated on China. On context like this, Imperial Japan distorted historical facts not to concede the remarkable history of Chosun. Imperial Japan had to distort ancient history of Chosun because of proving to be ruled by Japan from ancient time. In particular, Imperial Japan had needed a political principle to continue to exist the colonial rule of Chosun. So, Imperial Japan had expanded the hegemony by the political and religious principles as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the Naeseon Ilche or ‘Korea and Japan to be One’s policy and shinto worship. By doing like this, Historians of Imperial Japan got a historical base on a expansion policy of hegemony to Chosun, China, Asia and the Pacific, transforming the idea of world history of Ranke into a reasoning of Imperialism. Ranke’s idea of world history distorted by Imperial Japan, had became an ideology of the Imperialism of Japan, but also a historical recognition to understand the world. This was the essence of colonial view of history and the Empirical history of Japan style.

1. 들어가는 글

2. 일본 제국주의 역사관의 개념

3. 일제식 근대 역사학 탄생

4. 교토학파와 식민사관

5.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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