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가톨릭사상 제64호.jpg
학술저널

『1825년 로마교황에게 보내는 조선신자들의 서한』 연구

본 연구는 1825년 유진길에 의해 작성되고, 북경교회와 마카오를 거쳐 로마 교황청으로 전달된 조선천주교회의 공식서한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그 서한이 갖는 역사신학적 의미를 밝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위해 I장에서는 서한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고, II장에서는 서한에 대한 분석 작업을 했다. Ⅰ장의 연구를 통해서,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조선천주교회는 주문모신부와 평신도 지도층을 잃고, 교회 내부의 역량이 많이 줄게 되었다. 박해 이후 황폐해진 교회를 재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1805년부터 시작했고, 현세적인 어려움을 견디어내는 힘과 위로를 얻기 위한 성사생활에 더욱 큰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교회 재건 운동은 자연스레 성사생활을 위한 성직자 영입운동으로 이어졌고, 북경으로 가는 사신 행렬이 성직자 영입운동의 연결고리로 이용되었다. 1811년 조선신자들의 교황에게 보내는 서한은 조선교회의 사정을 알리고,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하는 첫 공식서한이었다. 또한 지역적으로 발생했던 박해로 인해서 조선교회는 더욱더 성직자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교회가 되었다. 정하상의 새로운 성직자 영입운동에 역관이었던 유진길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되었고, 1825년 유진길이 작성한 조선신자들의 교황에게 보내는 서한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교황청에 전달되었고, 조선 교황 대리 감목구를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었다. Ⅱ장의 연구를 통해서, 1825년 서한은 교황에 대한 인사말, 6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본문, 13개 항으로 이루어진 참고사항, 발신정보로 끝을 맺는 구조임을 분석했다. 6개의 문단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조선신자들의 신앙과 어려운 상황들을 전하고 있었고, 박해 이후의 어려운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기다리는 신자들의 희망을 표현했다. 또한 조선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선교를 위한 방안, 선교사 파견의 두 가지 방법적 차원을 요청했다. 또한 종교 자유를 위한 중국과 조선과의 외교관계, 성직자 파견이라는 교회의 사명에 대한 역설을 담고 있었다. 이 본문을 통해 이 서한이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이 핵심 목적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13개 항으로 이루어진 참고사항을 통해서 성직자 영입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고, 발신정보를 통해 이 서한의 원문이 1826년 12월 3일 라틴어로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1825년 서한이 갖는 두 가지 역사신학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1801년 신유박해로 시작된 조선교회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교회재건운동과 성직자 영입운동이라는 조선교회의 흐름 안에서 1825년 서한과 1811년 서한은 유사성과 같은 방향성을 가지는 조선교회의 공식문서이다. 하지만 1825년의 서한은 성직자의 긴급한 파견요청과 더불어 조선교회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직자의 파견을 통해서 안정화되기를 희망하는 신자들의 인식이 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요청은 북경교회의 박해로 인해서 아무런 교회적 지원을 받지 못했던 조선교회의 역사적 상황에 근거하고 있었다. 둘째, 1811년 서한이 유럽교회의 어려운 상황으로 성직자 요청에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 것과는 달리, 1825년 서한으로 인해서 교황청 포교성성에서 북경교회와는 별개로 조선교회를 위한 선교회를 찾고, 성직자를 안정적으로 파견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찾게 했다는 역사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조선 교황 대리 감목구 설정에 시발점이 된 조선교회의 공식서한이라는 점이 1825년 서한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다.

This study focused on revealing the historical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of the Joseon Catholic Church’s official letter written in 1825 by Jingil Yu and delivered to the Vatican through Beijing and Macao.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letter was studied in Chapter I, and the analysis of the letter was performed in Chapter II. Through the study in Chapter I, due to the Sinyu persecution in 1801, the Chosun Catholic Church lost Father Jumunmo and lay leadership, and the internal capacity of the church was greatly reduced. Efforts to reorganize the church, which had been devastated after the persecution, began in 1805, and he felt a greater thirst for the sacramental life for strength and comfort to endure temporal difficulties. So, the church reconstruction movement naturally led to a movement to recruit priests for the sacramental life, and the envoy procession to Beijing was used as a link to the movement to recruit priests. In 1811, the Chosun believers’ letter to the Pope informed the situation of the Korean church and was the first official letter requesting the dispatch of a clergyman. Also, due to local persecution, the Chosun Church became a church that needed more and more clergy care. The joining of Eu Jin-gil, who was a strong man in the movement to recruit new clergy by Jeong Ha-sang, was of great help. In 1825, Eugene’s letter written by the Korean faithful to the Pope was translated into Latin and delivered to the Holy See, and it had a great influence on establishing a proxy for the Pope in Joseon. Through the study of Chapter II, it was analyzed that the 1825 letter had a structure that ended with a greeting to the Pope, a text consisting of 6 paragraphs, a reference consisting of 13 paragraphs, and sending information. The text, consisting of six paragraphs, conveyed the faith and difficult circumstances of Korean believers, and expressed the hope of believers waiting for God’s mercy despite the difficult circumstances after the persecution. It also requested two methodological dimensions: the political situation within Joseon, a plan for missionary work, and missionary dispatch. In addition, it contained a paradox about the mission of the church: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Korea for religious freedom and the dispatch of clergy. Through this text, it can be seen that the main purpose of this letter is to send a clergyman to Joseon. In addition, the 13-point reference was conveying the details necessary for the recruitment of the clergy, and the source information showed that the original text of this letter was translated into Latin on December 3, 1826. Through this study, we were able to discover two historical and theological meanings of the 1825 letter. First, the letter of 1825 and the letter of 1811 are official documents of the Korean church that have the same direction as the church reconstruction movement and clergy recruitment movement that can overcome the difficulties of the Joseon church that started with the Shinyu persecution in 1801. However, it was confirmed that the 1825 letter contained the urgent request for the dispatch of the clergy and the believers’ perception that the Korean church hoped for stabilization through the continuous and stable dispatch of the clergy. This request was based on the historical situation of the Chosun Church, which did not receive any ecclesiastical support due to the persecution of the Beijing Church. Second, unlike the letter of 1811 that did not bear any fruit in the request of the clergy due to the difficult situation of the European church, the letter of 1825 found a missionary for the Korean church separately from the Beijing church in the Pontifical Congregation for Evangelism, and stably recruited clergy. It has the historical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of finding a practical way to dispatch.

들어가는 말

Ⅰ. 서한의 역사적 배경

Ⅱ. 서한의 분석

나오는 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