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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史와 古代 69輯.jpg
KCI등재 학술저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고조선 연구와 문제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한국사 연구는 한국고대사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마니시는 檀 君과 箕子 등 고조선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으며 그의 연구는후대 일본학계의 고조선 인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마니시가 단군을 부정하며 ‘王儉’이 평양의 옛지명인 ‘王險’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거나 단군을 해모수라고 본 것은 큰 오류가 있다. 『三國遺事』의 사례처럼 본래 고조선의 도읍 명칭은壇君王儉과 관련된 王儉城이 맞는 표기로 보인다. 또한 단군은 해모수와 동일인이 아니다. 이마니시는 단군 전승에서 불교적 요소가 적으며 구조를 보면 字句 상에 도교적 요소가 많다고했으나 그가 언급한 도교적 요소는 단군 전승의 원형이 아니라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그렇게 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마니시가 기자 동래를 부정한 것은 한국학계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마니시는 기자 동래를 부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환의 『魏略』은 樂浪 韓氏의 僞系譜에 근거한 기록으로 보고 『魏略』의 사료적 가치도 불신하였다. 그러나 일부 윤색된 부분이있더라도 『魏略』의 사료적 가치와 『魏略』에 나오는 고조선 왕들의 역사성까지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마니시는 기원전 3세기 이전 고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자가 와서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조선과 이후의 위만조선은 성격이나 강역이 다르다고 보았다. 즉 전자는 한강(옛 대수) 유역을 중심으로 한 韓種族의 나라이고 후자는 대동강(열수)를 중심으로 한 중국민족(支那民族)의 나라라고 본 것이다. 또한 진번을 충청도와 전라북도로, 진국을 경상도로 각각비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조선의 주민 구성과 진번ㆍ진국의 위치 비정은 오늘날 근거를상실한 견해이다. 고조선의 존속기간과 영역을 축소하고 한사군의 위치를 최대한 한반도 남쪽으로 비정하려했던 이마니시의 주장은 문헌ㆍ고고학 자료를 통해 볼 때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The studies on the history of Korea conducted by Imanishi Ryu were generally on the ancient history of Korea. He published several study results in fields related to Old Joseon, such as Dangun and Kija. His studies require more detailed analysis in that they significantly influenced the later generations of the Japanese academic world and their perception of Old Joseon. There are deep flaws in that Imanishi denied Dangun while stating that “Wanggeom” originated from Pyeongyang’s old name of “Wangheum” or that Dangun was the same person as Hae Mo-su. As in the case of “Samgukyusa,” Wanggeom-seong associated with Dangun Wanggeom is considered the correct notation for the original name for the capital of Old Joseon. Moreover, Dangun is also a different person from Hae Mo-su. Imanishi stated that there were only a few Buddhist elements and more Taoist elements in the expressions of the Dangun transmission. However, the Taoist elements he mentioned can be seen as written that way, not in the original form of the Dangun transmission but during the process of being set in characters. Furthermore, Imanishi’s denial of Kija’s migration does not seem very different from the views of the Korean academia. However, Imanishi did not stop at denying Kija’s migration but distrusted the historical value of Yilyag as he viewed Yu Huan’s Yilyag as records based on the fabricated genealogy of the Nakrang Han family. However, it is difficult to completely deny the historical value of the Yilyag and the historicity of the kings of Old Joseon that appear in the Yilyag even if there are partly embellished sections. Imanishi Ryu refused to acknowledge the true nature of Old Joseon before the third century BC but explained that Joseon before Wiman with the legend that Kija came to become king and the Wiman Joseon had different characters and territories. In other words, the former was considered a nation of the Korean race centered around the Han River(former Daesu), and the latter was considered a nation of the Chinese people centered around the Daedonggang(Yeolsu). Furthermore, Imanishi inferred that Jinbeon was Chungcheong-do and Jeollabuk-do, and Jinguk was Gyeongsang-do. However, this residential composition of the Old Joseon and location inference of Jinbeon and Jinguk are baseless views today. Imanishi’s claims that attempt to scale down the duration and territory of Old Joseon and modify the location of the Four Commanderies of Han to the far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have a considerable amount of problems when viewed through the literary and archaeological data.

Ⅰ. 서론

Ⅱ. 단군 연구 내용과 분석

Ⅲ. 기자 연구 내용과 분석

Ⅳ. 고조선 계통 및 영역 연구와 문제점

Ⅴ.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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