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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硏究 第57輯.jpg
KCI등재 학술저널

고려 혜목산 高達寺의 소속종단 변천과 배경

The Change and Background of Hyeomogsan Godalsa’s Buddhist Faction in Goryeo

DOI : 10.34275/kibs.2022.5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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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에서 고려말까지 혜목산 高達寺의 소속종단 변화와 그 배경을 고승비문과 고달사지 발굴결과를 통해 고찰하였다. 860년대 경문왕이 玄昱의 하산소로 지정한 때를 기점으로 혜목산문[고달사 종풍]은 고달사를 본거로 890년대까지 계승자 심희(審希, 855~923)에 의해 유지되었다. 그 후 경명왕대 심희가 국사례를 받고 하산한 김해 봉림사로[봉림산문] 본거를 옮겼다. 고려에서 고달사 재건은 심희의 계승자이자 이 절에서 출가한 璨幽에 의해 이루어졌다. 찬유의 교선일치 사상경향이 광종의 국왕권 강화와 연결되자 고달사는 찬유의 하산소로 되고 봉림산문[혜목산문]의 본거도 되었다. 고달사지는 법당, 승탑, 비, 影堂 등으로 이루어진 上院을 통하여 선종사원 구조의 특성을 보였다. 고려중기 義天이 숙종의 국왕권을 강화하는 배경으로 천태종을 창립할 때 고달사는 천태 五門[5개 소 사원]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고달사를 재건한 찬유의 천태사상경향이 문도에게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고달사는 국내 산파 계열로 보아 봉림산문[혜목산문]으로서 천태종에 합류하였다. 의천 사후 九山門계열에서 直投한 翼宗계열이 주도한 남숭산문[선봉사]이 으뜸이 된 ‘天台六法眷’ 형성시에도 고달사는 그 일원이었다. 건물 유적과 고급청자 유물로 볼 때 寺勢가 절정이었다. 원간섭기 충렬왕이 기존 불교계를 재편하기 위해 천태종을 지원하였다. 충숙왕대 국통이 된 丁午가 승정권을 가지고 國淸寺를 ‘六山根本’으로 재건하고 ‘天台六山’을 다시 결집하였다. 그 일원으로서 고달사는 14세기 후반에도 천태종 소속과 종풍을 유지하였다.

I examine this thesis on grand masters' inscription and Godalsa's site excavation result. From 860s to 890s Godalsa kept Hyeoimogsan school's base. In Kyeongmyeong King Simheui moved its base to Kimhai Bonglimsa. In Goryeo Chanyu rebuilt Godal Temple. Also Gwangjong decided this temple as Bonglimsan school's base. It had the traits of Zen temple's structure with Sangwon. When Euicheon's establishing Cheontaijong, Godalsa became one of 5 Cheontai schools. Because Chanyu's Cheontai thinking was succeeded by his pupils. When making 6 Cheontaidarma's factions after Euicheon's death, Godalsa was its group. In this time its force was the best. When Guktong Jeongo reassociated 6 Cheontai mountains on the base of Gukcheongsa in Chungsuk King, Godalsa kept Cheontaijong's ethos.

Ⅰ. 머리말

Ⅱ. 신라말 고달사와 혜목산 법맥의 향방

Ⅲ. 고려초 璨幽의 활동과 고달사

Ⅳ. 고려중기 천태종의 성립과 고달사

Ⅴ. 원간섭기 이후 천태육산과 고달사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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