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일본역사연구 제58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메이지 국가 건설기 일본 미술과 다카무라 고운

메이지유신은 불사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 1852∼1934)에게서 종래의 일거리를 앗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고운은 폐불훼석(廃仏毀釈) 정책으로 급감한 불상 대신 수출용 공예품과 역사적 위인의 동상 등을 제작했다. 메이지 시대 목조 작품으로는 최초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늙은 원숭이>(老猿)는 고운이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출품을 위해 제작한 작품이며, 일본 근대 동상을 대표하는 황거 앞 광장의 <구스노키 마사시게상(난코상)>(楠木正成像[楠公像])과 우에노 공원의 <사이고 다카모리상>(西郷隆盛像)은 고운이 그 제작을 총괄했다. 고운의 ‘불사’에서 ‘조각가’로의 변신은 미술을 식산흥업의 수단이자 국가정체성 구축과 내셔널리즘 강화의 장치로 이용한 메이지 정부의 미술 행정과 긴밀히 연동한다. 그러나 고운의 작업은 그의 아들이자 다이쇼 일본의 대표적 모더니스트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1956)로서는 결코 미술가의 일이라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미술은 자율적인 개인의 자기표현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모더니즘 예술관의 세례를 받은 고타로에게 고운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결여된 인물로, 직인의 에토스로 근대를 살아가는 시대착오적 인물로 보였다. 이 글에서는 메이지라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를 위한 미술”을 제작하는 데에 고운의 한계이자 구시대의 잔재로 여겨져 온 직인의 에토스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추적한다. 에도 불사와도 다이쇼 모더니스트와도 구별되는 메이지적 미술가 고운이 어떻게 자신의 ‘기술’을 발휘해 국가에 기여하고 입신출세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메이지 일본의 국가 건설과 미술의 관계가 보다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With the Meiji Restoration, Takamura Kōun(1852∼1934), a craftsman specializing in carving Buddhist icons, lost his traditional job and got new ones. Instead of Buddhist icon commissions, which decreased because of Haibutsu kishaku(literally “abolish Buddhism and destroy Shākyamuni”), Kōun produced crafts for export and monuments of historical heroes. “Old Monkey,” the first Meiji wooden work designated as an important cultural property, was carved by Kōun to submit it to the World’s Columbian Exposition in 1893 in Chicago and the two most famous modern Japanese monuments, the “Kusunoki Masashige Statue” in front of the Imperial Palace and the “Saigō Takamori Statue” in Ueno Park, were produced under the direction of Kōun. Kōun’s transformation from ‘craftsman’ to ‘sculptor’ was closely intertwined with the Meiji government’s art administration, which used art as a tool for “Shokusan Kōgyō”(encouragement of new industry) and an apparatus for the construction of national identity and reinforcement of nationalism. However, Kōun’s son, Takamura Kōtarō(1883-1956) as a representative modernist of the Taishō era, could not accept Kōun’s work as art. To Kōtarō, strongly influenced by the art theory of modernism asserting that art should be the self-expression of autonomous individuals, Kōun seemed a figure lacking self-consciousness as an artist and an anachronism living in the modern era with a craftsman’s ethos. This article explores the ways in which the craftsman’s ethos of Kōun, which has been considered as a limitation for him and the legacy of the old days, worked for the production of “art for the nation” that the new era of Meiji required. By examining how Meiji artist Kōun, distinguished from Edo craftsmen and Taishō modernists, used his skills for the nation and succeeded in life and career, I explore the relationship between nation-building and art in Meiji Japan.

Ⅰ. 머리말

Ⅱ. 박람회와 수출 공예품

Ⅲ. 도쿄미술학교와 ‘일본 미술’

Ⅳ. <구스노키 마사시게상>과 <사이고 다카모리상>

Ⅴ. 맺음말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