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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신궁봉경회의 활동과 제신 논리의 변용

이 논문은 1906∼1910년에 활동한 한일 양국의 친목과 한국인의 정신적 ‘교화’를 명목으로 한국에 신궁을 건설하고자 한 신궁봉경회(神宮奉敬會)에 대해 다룬다. 특히, 신궁봉경회의 주요 인물인 다카하시 히사시(高橋久司)와 이준용(李埈鎔)의 제신 논리를 비교하여 신궁에 대한 두 인물의 인식 차이를 고찰하면서,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궁봉경회를 통한 결합 관계가 성립한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혔다. 다카하시와 이준용의 제신 논리와 목적은 서로 달랐다. 다카하시의 경우 일본 황조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숭경하는 신사를 창건하여 한국인을 정신적으로 교화하고자 하였다. 반면 이준용은 단군과 태조 이성계를 직결시킨 한국인의 국조 숭경 의식에 집중하였으며, 안암신궁과 신궁봉경회를 중요한 정치 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신궁봉경회를 통하여 일본의 신도와 한국의 근대적 단군 신앙을 결합한 혼종의 종교 공간인 안암신궁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결합은 국조 숭경을 통한 정신적 결집의 도모를 매개로 이루어졌는데, 이전과는 구별되는 ‘근대성’을 지녔다. 그중 하나인 일본 신도는 황조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숭경하는 일본인 내셔널리즘을 내재하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종속성을 전제로 한 한국인의 정신적 ‘교화’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다른 하나인 한국의 단군 신앙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앞선 조선 시대에 단군이 기념되는 방식과는 달리 민족의 결합을 상징하는 국조 신앙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또한 그 내막을 다카하시와 이준용이라는 인물 단위로 좁혀서 살펴보면, 이러한 공간도 시대 상황에 따른 타협의 결과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카하시는 도한한 일본인으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국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하는 현실적 한계를 타개해야 했다. 또한 황족 이준용은 일본에서 망명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현실적인 국력의 차이를 목격한 인물이었고, 거세당한 자신의 정치력을 이러한 현실 안에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즉, 두 인물이 지향하는 ‘근대’의 형태는 달랐지만, 이들이 처한 시대 현실로 인하여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굴절과 타협이 발생하였다.

This study is about Shingungbonggyeonghoe, an organization whose goal was to build a shrine in Korea for the sake of amity between Korea and Japan and enlightenment of Koreans. Specifically, by comparing the purposes of enshrinement of Dakahashi Hisashi and Lee Junyong, the difference between the perception of the shrine of the two was examined, and despite the fundamental difference, this study revealed what led them to cooperate. The purpose of the enshrinement of Dakahashi and Lee was different. Dakahashi was eager to build a shrine enshrining the Japanese national god, Amaterasu Omikami in Korea, in order to ‘civilize’ Koreas in a religious way. Meanwhile, Lee focused on the idea of enshrining national founders, Dangun and Taejo, and tried to use Anam Shrine and Shingungbonggyeonghoe as his political background. Despite this difference, two created Anam Shrine, a hybrid religious space of Japanese Shinto and Korean modern Dangun belief through Shingungbonggyeonghoe. This combination was made through promoting spiritual amity by enshrining national ancestors, which has distinctive ‘modern’ features. Shinto embodied Japanese nationalism by enshrining the Japanese national god, Amaterasu Omikami. As Japan expands its influence on Korea, it transformed into a means of spiritual ‘civilization’ of Koreans. Meanwhile, confronting the national crisis, Dangun belief also transformed into a religion of national ancestor symbolizing the union of nations. Furthermore, the hybrid space was possible for the sake of two people, Dakahashi and Lee, and the circumstances they had to overcome. As a Japanese in Korea, Dakahashi had to elicit Koreans’ cooperation to achieve his goal. Meanwhile, Lee witnessed the power gap between Korea and Japan during his asylum, and was desperate to regain political power. The form of ‘modernity’ of the two people was different, but the circumstances they had to overcome made them cooperate despite the distortion and compromise.

Ⅰ. 머리말

Ⅱ. 신궁봉경회의 창설과 다카하시 히사시의 제신 논리

Ⅲ. 신궁봉경회의 재건과 이준용의 제신 논리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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