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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논총 제81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道學書院으로의 정착 과정과 조선후기 竹林書院 강학의 특징

본고는 선행연구에서 거의 주목하지 못했던 논산 지역 최초의 서원이자 사계 김장생의 예학이 최초로 구현된 죽림서원의 역사와 조선후기 강학의 특징을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먼저 서원 건립 이전 김장생의 황산 우거와 황산에서의 강학 전통을 검토하고, 건립 초기 지역과 무관한 인물의 제향으로 논란에 직면했던 황산서원이 이후 도학서원으로의 위상을 확보해가는 과정을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장생이 직접 설계한 강당 ‘憲章堂’ 및 조선후기 죽림서원의 강학 운영상과 특징을 검토하였다. 첫째, 1626년 황산서원의 건립 계기는 그 이전부터 있었던 김장생의 강학 전통에서 시작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는 16세기 후반 무렵 ‘兩湖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하고 江山의 景勝이 있는’ 강경의 황산 기슭에 ‘황산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강학처로 삼고, 그 아래 집을 지어 연산과 황산을 오가며 양호지역에서 찾아오는 문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초반 무렵,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아지자 황산의 정자가 너무 협소하여 더 넓은 강학공간이 필요했고, 이 때 강학 공간을 마련하는 김에 율곡의 사당을 함께 건립하자는 논의가 서원 건립의 배경이었다. 건립 계기가 ‘제향’이 아닌 김장생의 ‘강학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숙종대 남설된 여타 서원들의 위상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주목할 만하다. 둘째, 건립 초부터 지역과 무관한 인물의 제향으로 비판에 직면했던 황산서원이 이후 제향인의 선정 기준과 명분을 확립함으로써 도학서원으로의 위상을 확보해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17세기 초반 제향 인물 선정 기준에 대하여 불거졌던 의혹과 논란은 이후 송시열, 윤증 등 사계 문인들이 그 근거를율곡과 주자의 고사에서 찾고 이를 통해 ‘도학서원’으로서의 정통성이라는 논리와 명분을 확립함으로써 ‘해명’을 넘어 ‘도통’의 차원으로 전환되고, 18-19 세기에 이르러 제향 인물 선정 기준이 오히려 ‘도통서원’으로 공인받는 근거로 작동하게 된 과정을 검토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history and the educational characteristics of Jukrim-Seow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First, before the establishment of Jukrim-Seowon, Kim Jang-saeng's moving to Hwangsan and educational activities in Hwangsan were reviewed. In the late 16th century, he built a pavilion called ‘Hwangsanjeong (黃山亭)’ at the intersection of Hoseo and Honam and used it as a place for education. And he built a house under it and started teaching disciples who came from Hoseo and Honam. Around the beginning of the 17th century, as the number of disciples increased, the pavilion in Hwangsan was too narrow, and a wider educational space was needed. This is the initial background of the establishment of Hwangsan-Seowon. Second, at the beginning of the 17th century, Hwangsan-Seowon faced various criticisms for enshrin people unrelated to the region. However, this controversy later turned to the dimension of 'Dotong(道 統)' as Kim's disciples secured the logic and justification as a 'Dohak-Seowon(道學書院)' based on the historical events of Yul-gok and Zhu-Xi. As a result, in the 18th and 19th centuries, Jukrim-Seowon was recognized as a 'Dohak-Seowon' by the government. Chapter 2, examines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symbolic status of the Jukrim-Seowon as a Dohak-Seowon, which inherited the legitimacy of Confucianism in Joseon. Third, based on the 'Hwangsan-Seowondo(黃山書院圖)' included in the Hwangsan Gicheop(黃山記帖) in 1680 and some literature data, I pointed out the problems of the current Jukrim-Seowon architectural structure and corrected the errors of previous studies. Fourth, I reviewed the educational activities and educational characteristics of Jukrim-Seowon until the 19th century. Jukrim-Seowon was recognized as an ‘educational space for poetry and rituals’ rather than merely for acquiring literal knowledge. Also, they set the ultimate goal of education to inspire the Confucian students by 'instructing them in virtue and arousing their will.

Ⅰ. 서론

Ⅱ. 건립 이전 김장생의 황산 강학과 황산서원 제향인물의 선정 기준

Ⅲ. 죽림서원의 강학 공간과 사계 예학이 반영된 ‘憲章堂’

Ⅳ. 조선후기 죽림서원의 강학 운영상과 특징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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