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국침략에 따른‘일본해’명칭의 의미 변화〉는 서양 고지도의 동해 해역에 대한 통계수치의 공방에서 벗어나 일본이 동해의 명칭을 어떻게 불렀고, ‘일본해’의 명칭을 어떤 목적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는가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그것을 통해 일본의 팽창주의, 혹은 식민지 지배의 일환으로서‘일본해’의 명칭을 사용하였고, 그런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공해’로 간주하기보다는‘일본 내해’, ‘일본 영해’의 의미로 사용하여 조선, 나아가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여겼음을 드러내었다. 위와 같은 연구 방향을 가진 본 연구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도막부시절 현재 일본이‘일본해’라고 부르는 공해상을‘일본해’라고 한 표기는 거의 없다. 그 수치보다‘조선해’라고 한 경우가 보다 많다. 대부분의 지도의 경우 한국 동쪽 해역을‘조선해’라고 표기하고 있는 반면에 일본 서쪽 해역에 아무런 이름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1840년대 중반~1860년대에 오면‘일본해’의 명칭이 나타난다. 일본의 경우 이것을‘Sea of Japan’이 서양지도나 일본 지도에서 일반화된다고 하지만 이때의‘일본해’는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바다(공해)를 일본이‘Sea of Japan’이라고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호도하고 있다. 이때의‘일본해’는 주로 일본의 서쪽 바다에 치우쳐져 있고, 그와 함께 일본의 동쪽 바다를 칭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둘째, 근대 제국주의가 출현하면서 메이지시대 후발 근대 제국주의로 발돋움한 일본은 바다에 대한 영유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때 영해로서의 의미를 가진 일본 서쪽의 연안을‘일본 서해’, 혹은‘일본해’로 부르는 지도가 크게 늘어난다. 메이지유신 직후인 1869년 12월 일본 외무성의 佐田白茅와 森山茂, 齊藤榮일행이 조선의 사정을 내탐하고 외무성에 보고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와 태정관 변관에게 보낸 건의서를 보면 정한론에 근거하여 조선의 정벌을 주장하고 있다. 이때를 전후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일본해’라고 하는 지도가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조선 침략의 기운이 팽배한 1875~1876년(개항을 전후한 시기), 1882~1884년(임오군란~갑신정변), 1894년(청일전쟁) 등의 시기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일본해’라고 하는 지도가 급증한다. 그것은‘일본해’의 사용이 제국주의 일본의 영토 야욕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근대 해양법에 대한 이해가 증대되면서 해상주권의 확보는 습관상 현재 어로를 하고 있는지 유무와 실적에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국가가 적극적 어업장려책을 마련하여 일본 어부들의 동해에 대한 어로활동의 지원책을 마련하였다. 그것을 통해 일본 어부들의 어로활동이 미치는 범위를 해상주권의 확보로 간주하여 공해마저‘일본해’로 부르면서‘일본의 영해’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대만 및 팽호열도의 영토편입, 조선의 개항에서 식민지로의 병합에 따라 그 사이에 존재하는 바다를‘일본내해’의 의미를 가진‘일본해’라고 인식하였다. 그런 점에서 일본해의 명칭이 일본의 팽창주의 혹은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일본 영해’, 혹은‘일본 내해’의 의미를 갖는‘일본해’로 단독 표기한 1929년의 국제수로기구의 결정은 잘못 채택된 것임을 인정하여야 한다.
Koreans insist the term ‘East Sea’ was used for more than 2000 years in the region and support parallel term using ‘East Sea/Sea of Japan’ because “The term Sea of Japan was advertised as a result of Japanese expansionism or colonial rule”. In contrast, Japanese persist their own view on ‘Sea of Japan’ as unique term instead of Korean opinion on “East Sea was used for 2000 years’ because Korean insistence was only limited to the region and “Sea of Japan was unique term generalized throughout the world, which have used after 19th century in the region.” and dispute against Korean title “The term Sea of Japan was advertised as a result of Japanese expansionism or colonial rule” on the basis of majority of many 19th century old maps entitled Sea of Japan. This paper aims enlighten the purpose and how the meaning of ‘Sea of Japan’ started to call from the beginning of 19th century out of statistical dispute about the sea region by western maps to criticize Japan MOFA’s insist. This paper concluded that ‘Sea of Japan’ was used as territorial meaning of ‘inner Japan sea’ or ‘Japanese territorial waters’ instead of ‘international waters’ along with purposing the meaning as Japanese expansionism and colonial rule on Korea and more Asian continent. The result of the summary goes,First, The Sea of Japan during Edo era meant east side of Japan, which started to call by Western people. Second, rising recognition on the sea area by modern Imperialism have changed meaning of the sea from the place of exchange and trade to the sea of emperor or colony as territorial meaning in Japan. So, Japan as a late Imperialist started to use the name ‘Japanese Western Sea’ or ‘Sea of Japan’ on the western sea area of Japan. Third, modern International Law of the Sea made Japan to support positive fishery activity around the sea because the International Law of the Sea admits the territorial judgments on the basis of customary fishery activity and performance around the sea. That was the reason why Japan wanted to call ‘Sea of Japan’ for the purpose of territorial sea sovereignty around the East Sea as international waters considering Japanese fisher’s activity range in the region to aim ‘Japanese sea territory’. Furthermore, Japan tried to recognize the mid sea area between Korea mainland and Japan to call ‘Sea of Japan’ along with the annexation of Formosa, Pescdores, and Choseon as colony. In this point, the name of ‘Sea of Japan’ was well announced as the result of the Japanese expansionism and colonial rule. Fourth, I insist the decision of 1929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IHO) call ‘Sea of Japan’ which might imagine ‘Japanese territory’ or ‘inner Japan sea’ between Korea and Japan without considering historical situation was wrong and should use parallel term East Sea/Sea of Japan at least.
1. 머리말
2. 에도시대 ‘일본해’ 명칭의 사용과 그 의미
3. 메이지시대 ‘일본해’ 명칭의 의미 변화
4.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