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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조선후기 충청도 진휼창고의 구조와 운영

5창의 군향곡을 중심으로

충청도에는 5곳의 군향곡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운영하였다. 각기 다른 시기에 형성되었으나 기능은 비슷했다. 불시의 수요에 대비하거나 전시에 군향으로 비축하기 위하여 운영되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군향곡을 오래 비축할 수 없었다. 곡물이기 때문에 오래 보관하면 썩었다. 그러므로 환곡의 형태로 백성들에게 분급하고 새로운 곡물을 받아들여야 했다. 보관과 분급 사이에서 갈등의 요소가 존재했던 것이 군향곡이었다. 진휼곡으로 분급되기 시작한 군향곡은 정부, 감영, 군현 단위에서 각자의 입장이 달랐다. 정부는 군향곡을 비축곡물로 운영하고자 하였고, 군현에서는 환곡으로서 진휼 자원으로 삼고자 했다. 감영에서는 정부와 군현 사이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분급 규정과 상납 제도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충청감사의 갈등 조정 덕분에 19세기까지 군향곡은 대체로 잘 유지되었다.

In Chungcheong-do, a warehouse was operated to store Gunhyanggok. A total of five grain warehouses were operated. Each was founded at a different time, but its roles were similar. It was operated to prepare for unexpected expenditures or to stockpile in capacity during the war. However, Gunhyanggok could not be stocked for a long time. Since it is grain, it was difficult to store for a long time because it could easily rot. The positions of the government and local governments were different in Gunhyanggok, which was provided to the people for relief. The government wanted to operate it as a stockpile, and the provinces wanted to use it as a grain of relief. The Chungcheong provincial governor faithfully played a role in coordinating conflicts between the government and local governments.

Ⅰ. 머리말

Ⅱ. 군향 5창의 설치와 진휼곡 운영

Ⅲ. 군향곡의 곡물 수량과 분급 운영의 변화

Ⅳ. 군향곡을 둘러싼 갈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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