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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아태연구.jpg
KCI등재 학술저널

제비뽑기 선출방식을 통해 나타난 중세 노브고로드인의 세계관

노브고로드에서 시행된 베체의 존재나 대주교의 선출방식에서 나타난 제비뽑기방식은 당시 러시아 및 서유럽 세계의 공직선거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노브고로드가 러시아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초기 키예프 공후가 통치할 시기에, 노브고로드는 야로슬라프 공후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그의 정치적 배려 덕분에 노브고로드에는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객관적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둘째, 1054년 야로슬라프 현공의 사후,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됐고, 그 결과 키예프를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인의 부족연합, 혹은 연합체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소규모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 분권화 경향은 더욱 강화되어 지역 중심지들의 홀로서기 전략이 유효했던 시기에, 노브고로드는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노브고로드 공화국으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베체라는 실재적 기구의 존재 여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거과정에 나타난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출신성분이나 신분고하에 따라 공직자가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심, 신실한 종교적 믿음, 정직한 삶의 태도 등의 기준에 따라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이 지도자로 선발된다는 점이야말로 중세 노브고로드인이 가진 민주적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우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소노미아’(Isonomia)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세적 사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자유민들이 참여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베체와 고위 성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주교 후보로 선출되는 대주교 선거과정에 나타난 절차를 고려할 때, 노브고로드인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소노미아 원칙을 지켰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노브고로드인들의 민주적 전통과 그들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Novgorod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cities in medieval Russia. It served as one of the strategic space in trade routes from Baltic sea to Black sea. And so Novgorod became one of the wealthiest cities in Russia during the Middle Ages. In 1156 Novgorodians dismissed their prince, kniaz. From then they had elected their prince by themselves in veche, or city-assembly of Novgorod. Novgorod's veche itself chose not only prince, but also posadnik(mayor), tysiatskii(military commander), bishop, archbishop. This unique method continued to the end of Novgorodian independence in 1478. After Moscow principality took control of the Novgorod, this tradition disappeared. The important is that veche enabled it to select their leaders. However, the reason for calling Novgorod as democratic state is that it is not veche, but their mental mechanism. Taking account of the facts, that all the citizens in Novgorod took part in election, and bishop or archbishop were chosen by drawing lots, Novgorodians had kept in mind the principle 'isonomia,' that is to say all are equal before the law. In the long run, despite of medieval limitation that veche is thought to have considered of the major landholders in the Novgorodian lands except for slaves in the city, we can consider medieval Novgorod as democratic state.

Ⅰ. 문제제기

Ⅱ. 노브고로드의 흥망성쇠 (1136-1478)

Ⅲ. 노브고로드의 민주적 전통과 정치제도

Ⅳ. 대주교 선출방식에 나타난 노브고로드인의 세계관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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