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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예수의 십자가와 아리아드네의 탄식에 대한 니체의 주목과 버려진 여자의 원형 하갈

‘버림받음’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다. ‘버려짐’은 인간이 통과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황이지만 또 그만큼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예수의 십자가는 ‘버림받음’의 대표적 상징이다. 낙소스 섬에서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나 아브라함가(家)에서 버려진 하갈도 버림받은 자의 원형적 모습이다. 니체는 모든 것에서 버림받고 십자가를 지게 된 예수의 태도 속에서 ‘자유’를 보았고,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버림받은 자의 원형인 그들 의 태도 속에는 운명애가 무엇인지 들어 있다. 니체는 버림받은 자 예수와 아리아드네에게서 무엇을 본 것인가?니체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는 모든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의 상징이다. 그 운명애적 자유를 사랑하는 니체는 아리아드네에 대해 나 이외에 누가 아리아드네가 무엇인지 알겠냐며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탄식에 주목한다. 물론 니체는 아브라함 가(家)에서 버려진 여자 하갈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아리아드네에 대한 니체의 주목에 착안하여 모든 페르조나를 상실하고 아들과 함께 광야로 쫓겨나 떨기나무를 바라보며 방성대곡했던 하갈도 운명애적 존재라는 결론을 얻었다. 필자의 관심은 그 상징적 사건들이 버림받은 자의 신화적 원형이 되어 회자되고 있는 이유에 있다. 나는 니체가 예수와 아리아드네에게서 본 것이 자유고, 자기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서의 버림받은 여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하갈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운명애적 존재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누구나 진리를 소유할 수 없듯 진리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없다. 자기가 자기를 버리기 전에 버림받을 수 있는 자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음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가 된 이유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버림받은 무엇인가가 응어리 되어 뭉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자기가 뒤집어썼던 페르조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박탈감을 주기도 한 각종 페르조나들은 언젠가는 제거되어야 할 일시적인 버팀목일 뿐이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다. 되풀이 되는 업이 아니라 그 업을 뚫고 나오는 각성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소유하려 한다면 고통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Über den Begiff “Ausgesetztsein” ist die allgemeine Situation der Menschen nachgedacht. “Ausgesetztsein” ist eine Fragestellung, die allerdings die Bedeutung des menschlichen Lebens spiegelt. Der Gekreuzigte ist das Hauptsymbol von “Ausgesetztsein”. Adriane und Hagal, die von Abraham verlassen wurde, sind Archetypen der Ausgesetzten. So konzentriert sich für Nietzsche die Frage nach der Freiheit, wenn Jesus Christus ausgesetzt und am Kreuz gehängt wurde. Nietzsche wiest mit Nachdruck auf das “Selbstsein” hin, wenn Adriane im Naxos von Theseus verlassen wurde. Dem wesentliche Lebenshaltung der Ausgetzten entspricht “Amor fati”Nietzsche versteht Jesu Kreuz als das Symbol der Freiheit gegenüber dem Ressentiment. In den Zusammemhang mit der Frage nach der Freiheit wird Adriane insbesondere von Nietzsche gestellt. Aber Er gibt keine Aufmerksamkeit auf Hagal. Vor allem wird es wichtig sein, von vornein nur solchen Begriff “Ausgesetztsein” als integratonsfähig in den Fall der Hagal anzusehen,der aus der Perspektive des Verlustes aller ‘Persona’ forderbar ist. Ich will mit dem Neuansatz beim Verlust eine wesentliche Wendung in die Freiheitsfrage bringen, indem ich auf den mytischen Archetypus achtgebe. Ich will doch daran festhalten, dass für Nietzsche “Ausgeseztsein” lediglich das “Selbstsein” bedeutet, das mit der Wertung “Amor fati” verbunden ist. Niemand besitzt keine Wahrheit, niemand wird von der Wahrheit ausgesetzt. Kein Selbst wird von dem Selbst nicht verlassen. Trotzdem sind wir am Zentrum der Verlust angelegt, was sich auch daran zeigt, dass wir keine Antwort von “Selbstsein” mehr ins Feld führen können, sondern “Persona” in den Indentifizierung einbeziehen müssten. Das Leben ist kein Besitz, sondern die Erfahrung, die in dem aufeinanderfolgenden Karma nicht besteht. Sie ist die Erleuchtung, dass man das Karma zerbrechen und im Zentrum des “Selbst” bestehen muss.

1. 들어가면서

2. 버림받은 예수에 대한 니체의 해석

3. 버림받은 아리아드네의 탄식

4. 버려진 여자의 원형 하갈

4. 마무리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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