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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연구 제27권 제1호.jpg
KCI등재후보 학술저널

육사 이원록과 그 형제의 민족운동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한 위대한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다. 이러한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된 육사의 생애와 활동은 가문에 대한 자긍심과 형제애, 그리고 시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육사와 그 형제들은 저항과 투쟁의 동반자였다. 그 가문은 명문이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곤궁하였다. 그래서 그 형제들은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 형제는 학문에서는 동반자였고, 투쟁에서는 동지였다. 특히 평생을 저항과 투쟁으로 일관한 육사는 그 형제들의 화신이었다. 그와 그 형제들의 민족의식 형성에는 본가와 외가의 영향이 컸다. 조부이중직(李中稙)의 신교육에 관심과 근대적인 사상의 수용, 그리고 의병장 외종조부 허훈(許薰)․허위(許蔿)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리하여 신학문에 대한 열정과 민족의식에 바탕을 둔 저항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형 이원기(李源祺), 동생 이원일(李源一)과 함께 1925년 9월 비밀결사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관련을 맺게 되었다. 그는 1926년 7월과 1927년 8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중국 북경을 다녀오면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조선은행(大邱支店 爆彈事件)’에 연루되어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또 1930년 동생 이원일과 함께 ‘대구격문사건(大邱檄文事件)’으로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1931년 다시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1932년 10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를 입학하고,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義烈團)’의 단원이 되었다. 그는 1933년 의열단의 국내 활동을 위한 기반조성과 그 단원의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곧 체포된 뒤,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문단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1943년 다시 북경으로 가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43년 7월 국내로 들어와 서울에서 검거되었다. 그는 북경으로 압송되어 1944년 1월 16일 북경감옥에서 순국하였다.

Yuksa(陸史) Yi Won-Rog (李源祿) was a poet and independent activist who constantly engaged in resistance and struggle against the colonial ruling of the Japanese imperialists. The life and activities of Yuksa who constantly engaged in resistance and struggle could be attributed to his pride on his family tradition, affection of his brothers and passion toward his homeland as a poet. Yuksa and his brothers were partners of resistance and struggles. His family was well-respected one, but was economically poor. Therefore, his brothers could not attain regular education. However, these brothers were partners in academic fields and comrades in struggles. In particular, Yuksa who devoted his entire life in resistance and struggles was the embodiment of his brothers. In establishing their nationalistic consciousness for him and his brothers, the influence of the paternal and maternal families was significant. The influence comes from the accommodation of their grandpatent, Yi Joong-Zig (李中稙) with the interests on new education and modern ideology, and influence from their maternal grandfathers, Heo Hoon (許薰), Heo Wi (許蔿) and others, who were generals of Civilian Righteous Army. Thus, they developed their passion on new academic fields and sense of resistance based on the sense of nationalism. In September 1925, Yuksa, along with his older brother Yi Won-ki (李源祺) and younger brother Yi Won-ill (李源一), organized ‘Assassination Group (暗殺團)’, a secret organization, to commence in relation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For two occasions in July 1926 and August 1927, he visited Beijing, China to enthusiastically involv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1927, he was involved in ‘Bombing Incident of Daegu Branch, Joseon Bank’ of Chang Jin-Hong (張鎭弘) to be a subject of surveillance by the Japanese imperialists. Also, in 1930, he and his younger brother Lee Won-il was arrested for ‘Daegu Poster Incident (大邱檄文事件)’ to spent 6 months of time in prison. He went to Nanjing, China in 1931, entered Military-Political Academy for korean Revolution (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in October 1932, again to become a member of ‘Ui’yeoldan (義烈團)’, an organization for independence movement. In 1933, he returned to Joseon for establishing the basis for domestic activities of Ui‘yeol-dan and recruitment of the members. However, he was arrested, and then he lived with his family members in Seoul and fully focused on literary activities. He went to Beijing again in 1943 to jump into the independence movement activities. In July 1943, he came back to Joseon and arrested in Seoul. He was extradited to Beijing and died in a prison in Beijing on January 16, 1944.

Ⅰ. 머리말

Ⅱ. 출생과 성장

Ⅲ. 민족의식의 형성

Ⅳ. 독립운동의 전개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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