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 「낙고」편 해석은 바로 「강고」의 첫 구절 48자가 「낙고」의 탈간문이 아니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견해를 관건으로 「강고」, 「소고」, 「낙고」의 순서를 일련의 연속된 시간흐름의 서사로 파악한 점이 이광사의 독특한 『상서』 해석이다. 즉, 경인일(庚寅日, 2월 16일)에 「소고」의 서사가 시작되어 다음 달 갑자일(甲子日, 3월 21일)에 끝이 난다. 이 기간 가운데 「소고」가 시작된 지 약 한 달 이후인, 을묘일(乙卯日, 3월 12일)과 정사일(丁巳日, 3월 14일)은 「낙고」의 서사이고, 기미일(己未日, 3월 16일) 하루 전체가 「강고」의 서사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시간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본문의 시간표대로 나열해 보면, 「소고」, 「낙고」, 「강고」의 시간 순서를 한 눈으로 정리하여 비정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경문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려는 폭넓은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안이라 평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낙고」편의 채침설 ①“주공이 성왕에게 (자신의) 낙읍(洛邑) 체류를 허락하였다.”[周公許王留洛], ②“주공을 낙읍에 남게 한 것은 후세의 유후(留後)의 뜻과 같다.”[如後世留後], ③“종주(宗周)의 사보(四輔)가 되라는 것이니, 한(漢)나라의 삼보(三輔)도 여기에서 근본한 것이다.”, 그리고 ④“주공이 농사일을 밝힐 것이다”[明農]라고 한 것은 “주공이 물러나 늙으려는 것”[周公退老]이라는 네 가지 설에 대해서 당시 시대적인 배경 이해와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채침설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아울러 이런 내용을 종형(從兄)인 이광찬에게 질정하였고, 이광찬의 반박에 대해서 일부 수용은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재차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상서』「낙고」편 해석만 보자면, 주자학 일변의 고정된 해석이 아닌, 열린 관점의 비판적인 자세로 경학을 바라보려고 했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The most important key and starting point of Wongyo Lee Kwangsa’s interpretation of 《luogao》 is that the first 48 characters of 《kanggao》 are not the sentences of 《luogao》. Starting from this point of view, it is Lee's very unusual view to grasp the narrative sequence of 《kanggao》, 《shaogao》, and 《luogao》 as a series of events. The narrative of 《shaogao》 begins on February 16 and ends on March 21 of the following month. During this period, March 12th and March 14th after the beginning of 《shaogao》 is the period of 《luogao》. Also, the entire day of March 16 corresponds to the epic day of 《kanggao》. If these contents are arranged in chronological order, clearly and in the timetable of the text, the order of these can be arranged very simply. It can be evaluated that the original text was understood and critically interpreted regardless of the historical fact. Wongyo Lee Kwangsa looked at the book of history with an open, critical attitude rather than a fixed interpretation.
1. 서론
2. 원교 이광사 「낙고변」의 주요내용
3. 중옹(中翁) 이광찬(李匡贊)과의 논쟁과 주요 쟁점들
4.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