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석오 이동녕은 70평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 온 인물이다.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1869년에 태어나 이미 성인이 되기 전에 한말 자주적 독립운동단체인 독립협회에 적극 가담하여 간사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개화민권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후 그는 이종일이 창간한 제국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애국 계몽적인 다수의 논설을 기고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는 석오는 이상재, 전덕기 등과 함께 YMCA운동을 전개하면서 평등, 평화, 박애, 자비, 자주 및 자립정신을 정립하였다. 나아가 상동교회 안의 청년학원을 설립하여 내외의 청년을 육성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효과적인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1906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였다. 여기서 그는 이상설 등과 함께 북간도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하고 한인교포교육에 진력하였다. 그리고 그해 말 석오는 양기탁, 김구 등과 비밀항일결사체인 신민회를 주도적으로 결성·조직하여 총서기직을 맡아 실질적인 조직 운영과 정책의 수립과 방략 결정에 참여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신흥강습소, 부민단, 권업단 등을 조직하여 중단 없는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1914년에는 러시아에서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구국운동을 펼쳤다.
This study attends to analyse the patriotic thought and activities of Sukoh Lee Dong-Nyeong devoting to independence for their country in all his days. He was devoted to ‘dokriphyuphe’(獨立協會, independent association) at the end of Joseon Dynasty. He worked on positive lines with undertaking an assistant administrator's assignment in dokriphyuphe. From this, he developed a civilized rights movement. After, he contributed to a Jegukshinmoon(Imperial newspaper) as editorial writer. In the 1990's, he conducted a YMCA campaign with Lee Sang-Je, Jun Dunk-Gi. Trough this, he established the spirit of equality, peace, mercy, self-reliance and autonomy. After our country perishes, he flied from his country to Bookgando(北間島). Here, he founded a Suseon-Suhsuk(first national educational institution in Bookgando). With this educational institution, he spreaded out the educatuion for Korean residents in China. And he played a leading role for Sinminhae(新民會), a secret society and Joined in the decision on real organizational keeping, policy and strategies. Since then, he conducted a save-the-nation drive with a provisional government.
Ⅰ. 서론
Ⅱ. 성장과 시대적 배경
Ⅲ. 독립협회의 참여와 제국신문의 논객활동
Ⅳ. 상동교회의 조직과 활동
Ⅴ. 서전서숙의 설립과 민족교육
Ⅵ. 신민회의 조직과 국권회복운동
Ⅶ. 신흥무관학교의 설립과 인재육성
Ⅷ. 대종교의 포교와 대한독립선언서의 선포
Ⅸ. 맺음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