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충주 지역의 가치가 기본적으로 평양, 한성과 경주(현재의 경우 영남의 주요 도시)를 잇는 직선 교통로상에 위치한다는 점에 있다고 이해하였다. 고구려는 늦어도 광개토왕대가 되면 평양을 남방 전략의 거점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한성까지 차지했을 경우 충주의 중요성이 커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부차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반면 한성에 위치하고 있고 신라와 동맹을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려 했던 백제는 대신라 교섭 창구인 충주가 필수적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확보하려고 했을 것이다. 고구려는 대체로 북한강 유역의 춘천으로 들어와서 홍천, 원주·횡성, 그리고 남한강 유역을 통해 신라와 교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충주 지역에 진입할 수 없었다든지, 그런 사실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구도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이것은 남아 있는 고고학 자료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성 함락 이후 충주 지역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신라였을 것이다. 즉 고구려가 한성을 남방 거점으로 구축하기 전까지 일시적인 힘의 공백상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청주 남성골산성까지 직선으로 진출하여 백제를 압박했으며, 역시 신라에 대해서도 기존의 교통로를 통해 공격을 가하였다. 그 뒤 고구려는 달천 유역으로 비정되는 살수원, 그리고 충주에 비정되는 우산성 등을 공격하였는데, 대체로 한성을 적극적으로 경영하면서 충주 지역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충주 지역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역시 신라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백제, 고구려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6세기 중엽 충주 지역을 확보한 신라가 이것을 국원이라하고 중시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In this paper, it has been understood that the value of the Chungju region was based on its location on a straight road connecting Pyongyang, Hanseong and Gyeongju. Goguryeo used Pyongyang as a base for its southern strategy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gaeto. If Goguryeo occupied Hanseong, the importance of Chungju would increase, but if not, it would have secondary value. On the other hand, Baekje, which was in Hanseong and tried to counter Goguryeo through an alliance with Silla, would have needed Chungju, a channel to connect with Silla, and therefore would have tried to secure it. Goguryeo entered Chuncheon in the Bukhan River basin, connected to Silla through Hongcheon, Wonju-Hoengseong, and the Namhan River basin, and in some cases conducted military operations. This does not mean that Goguryeo could not enter the Chungju area or that such a fact would not have happened. Basically, such a composition was formed, and it is thought that this is consistent with the remaining archaeological materials to some extent. After the fall of Hanseong, it was Silla that exerted the most influence over Chungju. In other words, there was a temporary power vacuum until Goguryeo built Hanseong as its southern base. Goguryeo attacked Baekje in a straight line to Namseonggolsanseong Fortress in Cheongju and attacked Silla through existing traffic routes. After that, Goguryeo attacked Salsuwon, which is designated as Dalcheon basin, and Usanseong, which is designated in Chungju. It is judged that this is largely due to the active management of Hanseong and attention to the value of the Chungju region. However, it was Silla who considered the Chungju area more important than anyone else. This is because it was the most important window to advance to Baekje and Goguryeo, which occupied the Han River basin. It must have been for this reason that Silla, who had secured the Chungju area in the mid-6th century, called it Gukwon and valued it.
Ⅰ. 머리말
Ⅱ. 한성 함락 이전
Ⅲ. 한성 함락 이후
Ⅳ.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