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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蛟山의 정체성 考察

교산은 철저한 儒家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사상과 문장의 폭을 넓히기 위해 불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양명학 등 다양한 사상과 세계를 접하면서 윤리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교산은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였던 인본주의자이다. 불교를 숭상한다고 하여 世人의 주목을 받았고, 이로 인해 환로에서 파직을 당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儒家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佛徒임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따르시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겠다.’고 항변하였고, 佛書를 읽으면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佛家라고 하였다. 당시 소외계층이었던 서얼, 승려, 기생들과도 거리낌 없이 교류하였고 유. 불. 도와 민속신앙까지도 관심을 갖고 접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 왔다. 폭 넓은 학식과 그리고 외교가로서 중국의 사신으로 여러 번 다녀오면서 화려한 문장 능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교산은 唐詩風을 따른 것은 자신의 의식표출하기에 적합하여 이러한 시풍을 중시하였다. 스승에게 자신만의 시를 쓰고 싶다는 말에서 교산의 시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의 시풍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儒家의 禮敎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의식은 당시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인간본성을 억압하는 유가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교산의 여성관은 매우 흥미롭고 기이한 것이 사실이다. 불우한 계층과 교류하였지만 기생들의 순수한 사랑과 인간성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1. 서론

2. 시풍

3. 여성관

4.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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