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실기>는 실존인물 南怡(1441~1468)에 관한 일대기 형식의 활자본 고소설이다. 南怡는 17세에 무과에 급제, 25세 때 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데 이어 建州衛의 女眞을 정벌하고, 26세에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睿宗 1년(1468)에 亂賊으로 몰려 誅殺된 이후 純祖 18년(1818) 伸雪과 復爵이 이루어지기까지 실록에서는 단지 비난과 저주의 대상으로 지목되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그의 생애 전반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조선 후기에 簇出한 野史集을 통해 전승되어 왔다. 이에 따라 <남이장군실기>는《東閣雜記》․《涪溪記聞》을 비롯한 문헌 전승의 야사를 중심으로 민간에 전하는 허구적, 비현실적 이야기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작자에 의한 전승 자료의 부분적인 개작과 허구적인 창조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또한 작품의 표제에서 보듯이, 작자는 인물이 겪은 일의 실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바, 이로써 <남이장군실기>는 작자의 사실 지향적 기록의식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변이를 내포한 문헌 전승의 야사를 수용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작자의 사실 지향적 기록의식은 극히 소박한 수준이라 할 만하다. 한편 작자는 민족의 주체성과 진취적 기상을 고취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어 사회 전반으로 尙武精神이 팽배해 있던 일제 강점기에 전승 자료의 적극적인 수용과 부분적 개작, 그리고 허구적 창조를 통해 남이를 영웅적 인물로 형상화하고, 나아가 국난 극복 과정에서 富國强兵 혹은 故土恢復에의 염원을 구체화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의의를 깊이 되새기도록 의도하였다.
<Namyijanggun silgi> came into being from the effect of the unauthorized history. Namyi, as a historical figure, was allways one of characters who were blamed and cursed in the record history from putting to death as a traitor till clearing himself of a false charge, on the ground of such, for the most part of story that were connected with Namyi handed down by the unauthorized history of documentary tradition. Therefore <Namyijanggun silgi> wae made up accepting the unauthorized history postively, remaking the traditional materials and creating fictitiously pragmently by a writer, and resultly designed conform to reader's expectation. <Namyijanggun silgi> is a product of the consciousness for recording facts. but it is a simple taking acceptance the unauthorized history of documentary tradition into consideration. In addition, writer configurated looking for new hero's appearance and heart's desire of a wealthy country and a powerful army in <Namyijanggun silgi>
Ⅰ. 들어가기
Ⅱ. 창작 방법
Ⅲ. 창작 방법에서 살펴본 작자의식
Ⅳ.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