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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후보 학술저널

일제강점기 1937년 만주국 강덕제 발원 고려대장경 인경과 특징

1937년 고려대장경의 인경은 만주국 황제인 강덕제 溥儀의 발원과 요청에의해 조선총독부의 협조를 통해 경성제국대학 교수 高橋亨의 주관 하에 이루어졌다. 강덕제는 1935년 일본을 예방하는 가운데 궁내성 도서료와 제실박물관 소장의 조선, 중국, 일본의 고서화를 참관하였고, 고려대장경과 황벽판대장경에관심을 가졌다. 강덕제는 귀국 후 1936년 고려대장경의 인경을 조선총독부에요청하였다. 강덕제의 대장경 인경 발원은 독실한 불교 신앙에 기반하여, 불교의 총집인 대장경의 인경을 통해 공덕이나 보우를 구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대장경 인경은 만주국 강덕제 발원 대장경의 인경이었지만 중앙불교전문학교분을 추가하여 대장경 2세트를 철본으로 제작하였다. 또한 인경 소요 물품은 조선산을 사용하고, 인출 및 제본은 조선인이 조선 재래의 방식에의해 수행하였다. 인경은 1937년 6월부터 준비에 착수하여 9월 2일부터 10월 17일까지 인출 작업이 이루어졌고, 1937년 12월까지 제본 및 경함의 제작을완료하였다. 1938년 1월 초순 조선 총독의 확인을 받은 뒤 발송하여 만주국에는 1938년 1월 19일에 도착하였다. 강덕제에게 봉정한 것은 대장경본 1,163 책, 목록 3책, 경함 48개, 이외에 해인사 소장 대각국사문집 2책, 海印寺寫 眞帳 1책이었다. 인경본은 만주국과 평안도 묘향산 보현사에 봉안되었고, 만주국 소장본은 소재 미상이다. 1937년 대장경 인경의 특징에 대해서는 결판과 결자 보충에 대해 검토하였다. 1937년 인경시에는 1915년 결판을 보충하기 위해 재각한 경판에 대해 고려시대 원판의 재현을 의도하여 다시 18매를 조성하였다. 대장경판의 마멸이나결손에 대한 결자 보충에 대해서는 1915년 인경시 결륵자 조사 및 보충을 통해제작된 136개소 1,017자의 활자를 활용하여 동일하게 결자를 보충하였다.

In 1937,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Koreana was carried out under the supervision of Gyeongseong Imperial University professor Dakahasi Toru(高橋亨) through the coopera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at the request and praying of KangDeok-je, the emperor of Manchukuo. In 1935, the KangDe Emperor visited Japan and observed old books and paintings from Joseon, China, and Japan in the collections of the Palace Museum and Jesil Museum, and was interested in the Goryeo Tripitaka and the Hwangbyeokpan Tripitaka. In 1936, the KangDe Emperor requeste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o print the Tripitaka Koreana. It is presumed that Kang Deok-je's request for printing the Tripitaka was based on his devout Buddhist faith, and that he wished for merit or reward through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a compilation of Buddhism.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in 1937 was requested by the KangDe Emperor, but 2 sets of Tripitaka were printed with one copy for the Central Buddhist College. In addition, the items required for printing were produced in Joseon, and printing and binding were performed by Joseon people in the traditional way of Joseon. Preparation for printing began in June 1937, printing was done from September 2nd to October 17th, and binding and box production were completed by December 1937. The Tripitaka arrived in Manchukuo on January 19, 1938. What was sent to the KangDe Emperor was 1,163 books of the Tripitaka, 3 lists, and 48 boxes, as well as 2 books of Daegakguksa-munjib大覺國師文集 and 1 book of Haejangsa-sajinjang 海印寺寫眞帳 in Haeinsa. The printed version was enshrined in Manchukuo and Bohyeonsa in Mt. Myohyang, Pyongan-do, and the Tripitaka in Manchukuo is unknown. Regard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in 1937, the missing scriptures and supplementation of missing letters were reviewed. At the time of printing in 1937, 18 plates were engraved again with the intention of reproducing the original plate of the Goryeo Dynasty for the re-engraved plate to supplement the missing plate in 1915. The missing letters due to the damage of the Tripitaka scriptures were supplemented using 1,017 letters in 136 places produced in 1915.

Ⅰ. 머리말

Ⅱ. 인경배경 및 주관

Ⅲ. 인경과정 및 내용

Ⅳ. 인경특징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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