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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睨觀 申圭植의 국권회복운동 방략과 실천

睨觀 申圭植(1880~1922)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오롯이 자주독립의길을 걸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망명 이전 국권회복운동 활동에 대해 몇 가지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고, 과장된 행적이 비판적 검증 없이 재생산되는 실정이다. 본고는 처음으로 『文義郡量案』의 분석을 통해 그의 토지소유 관계 등 사회경제적 상황을 규명하였다. 또한 『漢城府戶籍』과 일제 비밀문서를 통해 그의 망명자금의 규모도 추산할 수 있었다. 특히 종래 그가 신채호, 신백우 등 이른바‘山東三才’와 함께 향리에 文東學院(1901), 德南私塾(1903)을 잇달아 설립하고강사로 활동하였다는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문동학교는 1908년 5월 靈 川學契를 계기로 설립된 것으로 바로잡았다. 또한 덕남사숙은 1914년 폐교된문동학교의 교명을 변경한 것으로 확인하여 예관은 물론 단재의 활동과 전혀무관한 것임을 밝혔다. 군대해산 이후 예관은 본격적인 실업구국운동에 나섰다. 대한협회 실업부회원, 皇城廣業會社의 설립과 운영, 특히 1908년 9월 공업연구회 조직과 이듬해 사장 겸 발행인으로서 ≪工業界≫ 발간을 주도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신규식은 대한제국 시기 의병, 교육구국, 실업구국 등 총체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국권회복을 모색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하여야 마땅하다.

Shin Gyu-sik(1880~1922) was a person who independently walked the path of independence in the Korean Empire and Japanese colonial era. However, there are some unresolved questions about his activities to restore national sovereignty before exile, and his exaggerated actions are reproduced without critical verification. For the first time, this paper investigated socioeconomic situations such as his land ownership relationship through analysis of the Japanese secret documents. There is an opinion that Mundong School was established in 1901 and Deoknam Sa-sook in 1903, but the analysis of the data confirmed that Mundong School was established in 1908. In addition, Deoknam Sa-sook confirmed that it was built in 1914 after Shin Se-sik and Shin Chae-ho defected, revealing that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m. After the dissolution of the military, he launched a full-fledged national rights restoration campaign, including the education movement and the unemployment movement. Shin Gyu-sik deserves to be evaluated as a representative figure who sought the restoration of national sovereignty by mobilizing overall methodologies such as righteous army, educational salvation, and unemployment salvation during the Korean Empire.

1. 머리말

2. 가계 및 사회경제적 기반

3. 상무정신과 항일 의병 계획

4. 문중학교 설립과 근대교육운동

5. 실업구국운동의 전개

6.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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