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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해방 직후 북한 문화유산 보존사업과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북한의 문화유산 보존사업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일련의 변화발전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일제 식민지 제도를 북조선인민위원회 질서에 맞게개편·이관하는 행정적 필요에서 시작되었으나, 점차 북한 민족문화 건설사업의일환으로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문화유산 관리기구는 1946년 각도 고적보존위원회, 1948년 3월 북조선중앙고적보존위원회, 1948년 11월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로 단계적으로확대 강화되었다. 특히 북한 정부수립 직후 설립된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물보’)는 명칭에서부터 사업의 범위, 지향점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사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명칭에서 ‘물질문화’라는 소련식 용어를 채용하였고, 서구 학계에서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인류학자 한흥수를 위원장에 임명하였다. 이는 1948년 소련과 동유럽의 정세 변화, 그리고 북한 내부의 급진적 흐름과 관련이 있다. 한흥수 지휘한 ‘물보’는 소련 스탈린주의 인류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조선인류학’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문화유산 보전·연구사업을 통하여 애국주의를 고취하기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에 근거한 유물사관을 적용, 학문적 발전을 도모하여, 과학적·합리적 인식으로 대중들을 교양할 것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추구하였던 ‘민주주의 민족문화 수립’과 ‘선진(소련) 과학의 수입’이라는 두 가지 과제 사이에 일정한 균열이 내포되었다. 국가건설기 북한은 인민민주주의 정치제체와 대중동원을 통해 운영되었으나, 한편으로 조선로동당 지배체제와 소련의 권위 속에서 스탈린주의의 철저한 관철을 추구하였다. 문화유산 보존사업을 둘러싼 균열은 이같은 북한의 내적 모순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Immediately after liberation, the preservation work of historic remains began as an administrative project to reorganize and transfer the Japanese colonial legal system by the order of the North Korean People's Committee, and gradually expanded its role as part of the North Korean national culture construction project. Han Hung-soo, as the chairman of the Committee for Survey and Preservation of Material Cultural Heritage, tried to establish the Chosun anthropology by introducing Soviet Stalinist ethnology. He also pursued to equip the public with scientific and rational awareness rather than promoting patriotism by enhancing national culture. Han's point of view was somewhat different from that of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In other words, Certain crack occurred in the two goals of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building democratic national culture and transfer of advanced culture from the Soviet Union.

1. 머리말

2. 북조선인민위원회의 문화유산 보존사업

3. 보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물보’)의 조직과 사업

4. 소련 학문 도입과 북한 고고민속학의 수립 문제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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