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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과 역사 제9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근대 한국에서의 황린(黃燐)성냥 퇴출 배경과 그 의미

이 연구는 제조상의 위해성과 사용상의 위험성을 이유로 현재는 생산과 유통이 금지된 황린성냥을 대상으로 한다. 황린성냥이 근대 한국에 유입된 이후 마침내 퇴출된 경과를 그려내고자 했다. 초창기 성냥은 위험물질인 황린을 함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화 위험이 컸다. 이에 황린을 적린으로 대체하였고, 발화 요소를 분산함으로써 안전성을 제고해나갔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황린성냥의 생산과 유통을 금지하는 규제안들이 마련되었다. 뿐만 아니라 1906년 베른조약, 1919년 ILO의 창설을 계기로 국제적 공조로 나아갔다. 이러한 조류에 근대 한국은 일본을 매개로 합류할 수 있었다. 굴지의 황린성냥 생산국이었던 일본은 당초 황린성냥 규제에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심각한 황린 중독 상황과 국제적 압력에 밀려 결국 ILO의 황린성냥 규제 권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1922년 <황린성냥제조금지법>이 시행되어 공식적으로 황린성냥의 제조 및 유통을 금지하였다. 한국의 경우, 개항 이후 황린성냥이 유입되어 사회 기층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황린성냥은 안전성냥과의 경합 속에서 그 편리성 때문에 줄곧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도 황린성냥이 생산되었지만,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구미 각국과 일본에서 황린성냥 규제가 보편화됨에 따라 곧 황린성냥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근대 한국에서는 식민정부의 노동정책이나 노동자들의 사회운동과 무관하게 작업장 내 황린 중독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하는 일이 없었다. 근대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공교로운 아이러니’를 배경으로 결과적으로 황린성냥이 퇴출되었다.

This study tried to elucidate the process in which matches containing material lethal to the body were introduced into Korea in the late 19th century and finally expelled. Early matches not only contained the dangerous material yellow phosphorus, but also had a high risk of misfire. Accordingly, yellow phosphorus was replaced with red phosphorus, and safety was able to improve by dispersing elements needed ignition. In line with these changes, regulations were prepared to ban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of yellow phosphorus matches. In addition, with signing of the Berne Convention in 1906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ILO in 1919, international cooperatio Ph.D. student, Dept. of Korean History, Seoul National University n for kicking out yellow phosphorus was promoted. Early modern colonized Korea was able to join this trend through Japan. At first, Japan, which was one of the leading producers of yellow phosphorus matches at the time, was lukewarm in regulating yellow phosphorus matches. However, due to domestic issues of the severe yellow phosphorus poisoning and international pressure, Japan eventually accepted the ILO's recommendation to reconfirm conclusion of the Berne Convention in 1906. Thus, in 1922, the <Act on Prohibition of Manufacturing Yellow Phosphate Matches> was enforced, officially banning the manufacture and distribution of yellow phosphorus matches. In the case of Korea,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yellow phosphorus matches were introduced and rapidly spread to the masses. In competition with safety matches, yellow phosphorus matches had usually been superior because of their convenience. Yellow phosphorus matches were also produced in Korea from the late 1910s, but yellow phosphorus matches soon disappeared from the market as the prohibition against yellow phosphorus matches became common in Europe and Japan in the 1920s. Thus, in modern Korea, resultantly yellow phosphorus poisoning in the workplace did not emerge as a serious social issue. This was not because of the colonial government's policy or the colonial labor movement, but because of a coincidental irony by a kind of constraining circumstance.

머리말

1. 황린성냥의 위험성 인식과 규제 논의의 진전

2. 근대 한국 성냥시장의 동향과 그 추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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