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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과 역사 제9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한국 환경운동의 ‘새로운’ 주체, ‘주부’

'Housewife', the 'New' Subject of the Korean Environmental Movement : the Citizens' Movement Society against Pollution 1986~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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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80년대 한국 환경운동을 이끌었던 주체로서 ‘주부’의 등장 과정과,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의 활동과 성격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조국 근대화’ 목표 아래 주부들은 가정과 지역 공동체의 합리적인 관리자로 호명되었으며, ‘공해’나 ‘환경’ 문제와 연결되어 인구조절이나 자원절약에 힘쓸 것을 요구받았다. 1970년대 들어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공동체는 근대화와 발전 담론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고, 일부 여성들은 크리스챤아카데미와 공해문제연구소가 실시한 주부교육과 공해교육을 통해 환경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다. 환경운동가로서 자각한 여성들은 1986년 9월 13일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를 조직했다. 공민협은 공해문제를 여성이나 주부, 소비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범계층적, 범국민적’ 시민운동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민협이 시행했던 공해피해조사나 교육활동은 대부분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괴리는 당대 ‘주부’로 호명되었지만 운동 주체로서 자각했던 여성들이 마주쳐야 했던 역설을 보여준다. 운동 주체로서 나서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시민으로서의 존재를 내세워야 했지만, 정작 실질적인 운동에서는 차별적인 성 역할에 맞서 ‘사회운동가로서의 주부’를 육성하기 위해서 주부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토대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This article aims to analyze the emergence process of “housewife” as the main subject of the Korean environmental movement in the 1980s and the activiti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Citizens' Movement Society against Pollution established by them. Under the Park Chung-hee regime's goal of “modernizing the country” in the 1960s and 1970s, housewives were called reasonable managers of families and local communities. In the 1970s, certain housewives identified themselves as environmental activist through education programs of the Christian Academy and Pollution Research Institute. On September 13, 1986, they organized the Citizens' Movement Society against Pollution. The Society emphasized that pollution should be approached as a social structural issue, not a problem of women, housewives, or consumers, and advocated a “pan-class and pan-national” civic movement. However, housewives mostly conducted and leaded the activities. This gap shows the paradox that female activists had to encounter at that time. In order to become an activist, they had to identify themselves as a universal citizen, but in actual activities, they had no choice but to work based on their own identities as a housewife and a woman to foster “housewife as a social activist” against the discriminatory gender role.

머리말

1. 1960~70년대 ‘주부’ 담론과 공해운동의 태동

2. 1980년대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의 성립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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