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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연구 제24권 제1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신자유주의 시대 대안적 대인소통법으로서의 파레시아(Parrhēsia)

우정과 호기, 비판이 순환되는 소통게임

고대인들은 권력이 요구하는 바가 아닌 스스로 정립한 실천의 양식 안에서 자신의 삶을 운용하려는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결점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줄 용기 있는 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개인의 주체화 여정에 필수적인 타인의 담론인 파레시아는, 자신을 경쟁 도구로 계발하여 자신의 인생을 기업가처럼 경영하려는 개인들을 주조해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대인소통법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푸코는 파레시아라는 이 비판적 담론실천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화의 도구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푸코의 희망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파레시아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파레시아 연구들은 주로 공적인 영역에서 용기있게 말하기와 윤리적 주체의 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커뮤니케이션 학문 영역인 소통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경향은 파레시아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질 수 있는 질문 중 또 다른 중요한 측면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먼저 성찰적 주체화를 이끄는 파레시아의 장소에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공론장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오고 가는 대화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파레시아는 공론장에서든 일상의 대화에서든 화자의 용기와 기술이 청자의 용기와 기술과 결합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실천행위이다. 구체적으로 화자에게 파레시아는 타인을 주체로 만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타인의 결점을 솔직히 말한다는 윤리적 차원과 적절한 상대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말하는 그 적절함, 즉 ‘카이로스’를 발견하는 기술적 차원이 함께 관련된 말하기 양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레시아의 출발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신호, 구체적으로 듣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들을 준비와 능력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말하는 이는 그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채고 듣는 이에 맞게 담론을 변형시켜야 한다. 그래서 파레시아는 일방적이지 않다. 파레시아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고 ‘카이로스’ 기술을 발휘할 때 비로소 비판이 순환되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주체들의 소통게임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대인관계에서의 비판을 주로 상처로 연결시키고 부정적 의미로 가둬버린다. 그 가둬버림에 대한 파레시아가 이 글의 목적이다. 말하는 이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해 타인에 대한 비판을 사전에 자기검열하고 듣는 이는 상처받을 두려움에 비판을 청하지도 수용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건너가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머뭄은 안전하지만 새로운 곳을 향하는 자유의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The ancients thought that a person who wanted to manage his or her life within the self-established mode of practice, not as required by power, needed someone with the courage to speak honestly about his or her flaws. As such, Parrhēsia, the discourse of others essential to the journey of individual subjectification, is not an interpersonal communication method suitable for the era of neoliberalism, which molds individuals who want to manage their lives like entrepreneurs by developing themselves as tools of competition. However, at that point, Foucault tried to reconstruct this critical discourse practice called Parrhēsia, as a tool for critical reflection on individualization in the era of neoliberalism and a new subjectification beyond it. Like Foucault's hope, our society is also exploring Parrhēsia, in various academic fields. However, Parrhēsia studies in our society tend to focus mainly on courageous speaking in the public realm and the formation of ethical subjects. From the point of view of communication, this trend overlooks other important aspects of the questions Parrhēsia can pose to our society today. First of all, the place of Parrhēsia that leads to reflexive subjectification should include not only the public sphere that constitutes democracy, but also the conversations that come and go in our daily lives. And Parrhēsia is a practical act that is completed only when the speaker's courage and skill are combined with the listener's courage and skill, whether in a public forum or in everyday conversation. Specifically, for the speaker, Parrhēsia has the ethical dimension of speaking frankly about the faults of others even at the risk of making others angry, and the technical dimension of discovering the appropriateness of speaking to the right person at the right time at the right time, that is, 'Kairos'. It is a form of speech in which dimensions are related together. What is important here is that doing Parrhēsia begins not with the speaker, but with the signal of the listener, specifically, that the listener is ready and capable of hearing criticism of himself. The speaker must be sensitive to the signal and transform the discourse to suit the listener. So Parrhēsia is not one-sided. Parrhēsia is a communication game between the subjects that can be effective when criticism is circulated only when the speaker and the listener show ‘Kairos’ skills with ‘favor’ towards each other. However, today's society mainly connects criticism in interpersonal relationships with hurt and confines it with a negative meaning.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o Parrhēsia about that confinement. If the speaker self-censors criticism of others in advance in consideration of the disadvantages that will return to him, and if the listener does not ask for or accept criticism out of fear of being hurt, then in the end we can not cross over and have no choice but to stay in the same place. Staying is safe, but it doesn't give you the pleasure of freedom to head to a new place.

Ⅰ. 서론

Ⅱ.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화 논의

Ⅲ.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인소통법–경쟁 자원 혹은 안전기술

Ⅳ. 대안적 대인소통법으로서 파레시아–자기배려하는 주체들의 소통게임

Ⅴ.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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