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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4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南洋拓殖株式會社의 조선인 동원과 그 실태

南洋拓殖株式會社의 명부 분석을 중심으로

이 글에서는 명부자료를 활용하여 1940년 이후 남양척식주식회사의 조선인노무자 동원 실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남양척식은 당시 일본의 국책사업 수행을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로서, 남양군도 각지에 사업장을 개설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하여 많은 조선인들을 동원한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남양척식의 조선인 동원은 적어도 1940년 5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때 동원된 노무자들은 충청북도 출신으로 단신노동자가 아닌 가족들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동시에 온 적지 않은 수의 노무자들이 한 작업장에 배치된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으로부터 함께 동원되어 온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척식은 조선인들을 팔라우본점, 얍사업소, 포나페사업소, 트럭사업소, 앙가우르광업소, 파이스광업소 등 여러 사업장에 분산하여 배치하였다. 조선인들은 광산에 배치되어 인광을 채굴하거나 각지의 농장에서 채소재배에 종사하였다. 남양척식은 당시 남양군도 각지에 배치되기 시작한 군부대에 채소를 제공할 목적으로 농장을 설치하였다. 인광은 농업생산 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군수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광물질이었으므로 중요시되었다. 명부를 통해 살펴본 바에 따르면 남양척식이 동원한 조선인은 총 2,324명이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전체 노무자 중 68% 가 광산노무자인 것으로 확인된다. 지역적으로는 충북 출신이 전체의 68%를 차지하였다. 남양척식의 국내 사무소가 청주에 있었기 때문에 충북 출신 노무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외의 노무자들은 대부분 충청남도 출신이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본군은 1944년부터 남양군도 각지의 노동자들을 군의통제하에 두고 군사시설 구축에 동원하기 시작하였다. 남양척식의 노무자들도일본해군에 동원되어 군사시설 구축 등에 투입되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전투에휘말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대표적인 예로 팔라우 각지의 작업장에 있던남양척식의 노무자 중 일부는 일본해군 제30건설부에 배치되어 펠렐리우로 동원되었다가 전투에 휘말려 대부분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다.

This article attempted to examine the mobilization of Korean workers at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 after 1940 using the list data. It is confirmed that the mobilization of Koreans in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 began at least in May 1940.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 distributed and deployed Koreans in various workplaces such as Palau Main Branch, Yap Office, Ponape Office, Truck Office, Angaur Mining Office, and Fais Mining Office. The Koreans were deployed to mines to mine phosphor or to cultivate vegetables on farms in various regions.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 established a farm to provide vegetables to military units that began to be deployed in various parts of South Sea Islands at the time. Phosphor was considered important because it contributed greatly to the promotion of agricultural production and was a mineral that could be used for military purposes. According to the list, a total of 2,324 Koreans were mobilized by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 It is confirmed that 68% of all workers are mining workers. Locally, people from Chungbuk accounted for 68% of the total. It is estimated that there were many workers from Chungbuk because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s domestic office was in Cheongju. Most of the other workers were from Chungnam. As the war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the Japanese military began to mobilize workers from various parts of South Sea Islands under the control of the military in 1944 to build military facilities. South Seas Colonization Corporation’s workers were also mobilized by the Japanese Navy to build military facilities, and many of them were found to have died in battle.

1. 머리말

2. 조선인 동원시기 및 지역

3. 각 사업소별 동원 현황 검토

4. 조선인 노무자의 해군부대 동원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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