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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王符之《潜夫论》的引诗初探

이상의 몇몇 시의 비교 분석을 통해, ≪잠부론≫ 속에 인용된 ≪시경≫은 그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詩≫의 訓詁에 대한 ≪毛傳≫, ≪三家詩≫의 범주에서도 이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깎아지른 저 남산(節南山)>에서의 “네 필 말 멍에 하니 네 필 말 힘차건만(駕彼四牡, 四牡項領)”이라는 구(句)는 더 이상 말(馬)과 관련짓지 않는다. 또한 “나라 이미 망했는데 어찌 아니 돌아보나(國旣卒斬, 何用不監)”라는 구(句)에서 신하를 가리키는 것은 곧 신하를 질책하는 것이며, 임금을 가리키는 것은 임금을 질책하는 것을 뜻한다. ≪잠부론≫에 있어서 ≪시경≫의 본 의미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칠월(七月)>은 백성을 일깨우는 農科全書이고, <흰 망아지(白駒)>은 더 이상타는 말이 아니다. <하염없이 오는 비(雨無正)>는 날카로운 필치로 반박하고 있다. 王符가 四家 중 어느 일파에 속하든지 간에,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 스스로가 ≪시경≫에 대한 자신의 상세한 해석을 자유자재로 작품 속에 덧붙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그 자신이 속세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기를 원하면서, 국정을 근심하고 백성의 질고를 걱정하며,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사상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잠부론≫에서의 ≪시경≫에는 더 이상 학파의 논쟁이 존재하지 않고, 문파의 편견 또한 존재하지 않은 채, 그저 ≪시경≫을 늘 예비 된 백과전서로 보고서, 이를 자신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자기만의 언어로써 기술하였다. 다시 말해서 ≪시경≫이 경전이기 때문에 반드시 교조적인 공구로써 받들어져서는 안 된다. 전체 ≪잠부론≫ 속에 ≪시경≫의 篇意, 章句, 詞匯, 字에 관한 왕부의 인용은 200 곳이 넘는다. 이는 하나의 경전으로써 왕부와 당시의 사회문인들의 마음속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자, 동시에 학자들에게 있어 하나의 본보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왕부 ≪잠부론≫에 인용 된 시에 대한 몇 가지 분석으로, 인용 된 시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은 아니다. 그러한 까닭에 논문에서 얻어진 결론은 여전히 편차를 지닌다. 그러나 東漢 중후기 사람인 왕부가 창작과정에서 표현한 ≪시경≫에 대한 활용 인식방법은 ≪시경≫에 대한 동한 사람들의 인식 정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는 곧 ≪시경≫이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적인 경전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창작을 하면서 자신의 논점을 강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자연히 ≪시경≫을 끌어와 뜻을 풀었는가 하면, 논점을 옹호하고 강화시켰다. 고증에 의하면, 왕부는 魯詩를 배웠지만 그는 창작과정에서 經學의 학파나 문파에 국한하지 않고 三家詩와 毛詩의 해석을 더불어 사용하였다. 본 논문은 몇 가지 분석을 통해, 왕부의 이러한 특징을 대략적으로 밝혀냈다. 본 연구자는 이 논문이 동한의 詩學史에 있어 왕부의 지위와 그 공헌한 바를 밝히는 하나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一. 汉代诗经学

二. 王符≪潜夫论≫

三. ≪潜夫论≫中的引诗

四. 小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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