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중국인문학회.jpg
KCI등재 학술저널

試論蘇世讓中國使行詩的主要觀點

朝鮮 前期 때의 문인 蘇世讓(1486∼1562)은 中宗二十八年(明世宗嘉靖十二年,1533)에 嘉靖皇帝가 황태자를 얻자 이를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임명되어 그해 12月16日부터 다음해 4月24日까지 중국에 다녀오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陽谷赴京日記》와 使行詩를 적어 여행 중에 만난 여러 사건과 자신의 감정을 담아냈다. 본고는 조선시대 연행록 연구의 일환으로, 그동안 별로 연구되지 못했던 蘇世讓의 이러한 사행 자료들을 문학텍스트로 삼아 그 주요 관점과 특징을 분석해내고자 했다. 본문에서는 蘇世讓의《陽谷集》卷3과 卷4에 수록된 使行詩의 내용을 ‘愛鄉․愛國의 情懷’, ‘華夷的 世界觀’, ‘嘉靖朝政의 腐敗에 대한 비판’ 등 세 측면으로 갈래지어 살펴보았다. 먼저, 蘇世讓은 여행길의 온갖 악조건을 만나면서도 막중한 使節 임무를 완수하게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추슬러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玉河館五思歌〉와 같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시들이 적지 않음을 살필 수 있었다. 둘째, 華夷的 世界觀에 토대를 둔 朝鮮의 小中華意識은 스스로를 또 하나의 ‘華’로 여기면서 中國을 제외한 이웃나라를 ‘夷’로 규정한다. 當代의 이러한 보편적 의식 속에서 蘇世讓 또한 使行 여정에서 만나게 된 여러 中國 北方民族을 ‘夷族’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詩文 속에서 줄곧 貶視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들에 관련되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켜 胡天․胡床․胡兒․胡笳 등 ‘胡’로 지칭하였고, 그들을 熊․虎․狼․豺․貅 등 强暴한 짐승으로 비유되는 ‘賊’으로 표현하는 데서 이러한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셋째, 蘇世讓의 使行作品에서는 明朝의 수도를 ‘皇城’이나 ‘帝京’으로 표현하고, 明朝를 아예 ‘朝廷’으로 지칭하는 등 天子/諸侯國 사이의 宗藩 구조로 인식한다. 이런 맥락에서 〈逢御史行〉과 같은 사행시에서는 大國에 온 小國 백성의 感慨가 표출되기도 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지나친 사대주의적 시각으로 평가될 수도 있지만, 이는 당시 현실적, 외교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이처럼 大國 景物의 壯觀에 놀라면서도 그는 또한 당시 明朝의 비참한 현실에도 주목한다. 즉 寧遠城의 飢饉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 朝政에 태만한 채 女色에 탐닉하는 황제 등에 대해 직․간접적 비판도 함께 제시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燕行錄은 高麗시대부터 시작되어 朝鮮시대에 와서는 갈수록 매우 다양한 인물에 의해 수많은 기록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정리된 이들 400 여 종의 연행록 가운데 본고에서는 조선 전기 蘇世讓의 使行 詩文을 일차 검토하였고, 본문에서 검토 결과 얻은 몇 가지 특징은 앞으로 비슷한 시기나 전후 시기의 다른 연행록들과 비교함으로써 서로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토대적인 내용이라 하겠다.

一. 序論

二. 蘇世讓中國使行詩之主要觀點

三. 結語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