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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사론 제58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갑오개혁기 훈련대 연구

훈련대는 1894년 7월부터 진행된 군제 개혁의 결과물로 갑오개혁기 신식 군제에 입각한 조선의 유일한 군사 조직이었다. 중앙 2개 대대, 지방 2개 대대로 편성된 훈련대의 주도권 확보는 사실상 조선의 무력 장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훈련대는 개혁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던 세력들 간의 갈등에 끊임없이 휘말렸다. 박영효와 조희연의 대립, 박영효와 고종의 대립이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훈련대는 을미사변에 가담한 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해산 수속을 밟았다. 훈련대가 을미사변에 가담한 동기와 관련해서는 보통 근왕파와 친일 개화파 세력의 갈등을 든다. 그러나 박영효의 축출 이후 훈련대 장교들 대다수는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였다. 문제는 훈련대 해산 소문이 불러온 파장이었는데, 이를 통해 자신들의 군부 내 기득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장병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일본의 왕비 시해 계획에 협조한 것이 그들의 을미사변 가담 동기였다고 할 수 있다.

The Hullyeon-dae was the only military organization in Joseon based on the new military system during the Gabo Reform as a result of the military reform that began in July 1894. It was composed of four battalions, two were central battalions located in Seoul, and the other two were local battalions located in Pyongyang and Jeonju. Securing the initiative of the Hullyeon-dae actually meant Joseon’s military control. The conflict took place between Park Young-hyo and Cho Hee-yeon in the first and Park Young-hyo and King Gojong in the second. The Hullyeon-dae was disbanded due to public criticism after taking part in the Eulmi Incident. Regarding the motive for the Hullyeon-dae’s participation in the Eulmi Incident, it usually refers to the conflict between the Royal faction and the pro-Japanese enlightenment faction. However, after Park Young-hyo’s outster, most of the Hullyeon-dae officers advocated political neutrality. The problem was the repercussions of rumors on the disbandment of the Hullyeon-dae. The officers of the Hullyeon-dae, who felt threatened by this rumors, cooperated with Japan’s plan to kill the queen bacause of their interests, which was their Motive for participating in the Eulmi Incident.

Ⅰ. 머리말

Ⅱ. 훈련대의 설치과정

Ⅲ. 훈련대를 둘러싼 주도권 갈등

Ⅳ. 훈련대의 을미사변 가담과 폐지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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