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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고려 국왕 즉위에 관한 외교 형식의 변화와 의미

Change and meaning of diplomatic formalities regarding enthronement of kings of Goryeo

동아시아 전근대 사회의 국제 관계는 국가 간의 현실적인 힘의 우위를 유교 정치 사상의 예적 질서로 수식하면서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이 같은 예적 질서의 가장 중요한 매개는 책봉이었으며, 이에 새로운 국왕의 즉위를 알리고 이에 대한 책봉을 이끌어내는 국왕 즉위에 관한 외교는 국가 간의 관계와 정치적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이다. 고려시대 국왕 즉위와 관련한 외교 형식은 칭사(稱嗣), 청전위(請傳位), 청승습(請承襲)으로 구분한다. 고려 전기 대부분 국왕의 즉위는 사위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국왕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권위가 혈연적 승계를 통해 정당성을 이어나간다는 인식에 바탕에 둔 안정적인 왕위 계승 방식이다. 즉위한 국왕은 상대국에 사위를 알리는[稱嗣] 사신을 파견하고 그 표문을 올렸다. 그러면 상대국에서는 전 왕의 죽음에 대한 조문과 새 국왕을 인정하는 기복사와 책봉사를 때에 맞춰 보낸다. 이러한 절차는 사위라는 안정적인 왕위 계승과 함께 고려와 책봉국 사이에서 의례적 절차로서 자리 잡았다. 사위와 달리 선위는 현실적 정치 세력의 다툼과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졌다. 본래 선위는 훌륭한 자질을 가진 자에게 지위를 이양하는 것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권력의 압박에 의해 국왕이 폐위되고 다른 왕이 즉위하는 것이다. 고려에서 강조 정변에 의한 현종의 즉위, 숙종이 조카인 헌종에게 선위를 받은 사례, 무신집권자에 의한 왕위 교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고려에서는 새 왕의 즉위를 마치고 선양한 사실을 요와 금에 알렸다. 요나 금에서는 고려의 왕위 교체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에서 왕위를 교체하더라도 양국 관계를 이전과 같이 유지한다면 고려의 선위에 대해 의례적으로 인정했다. 고려-몽골 관계에서는 국왕 즉위를 둘러싼 의례는 물론이거니와 고려 국왕으로서 지위와 권위가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진다. 충렬왕부터 충혜왕까지 국왕은 세자에게 전위할 수 있도록 몽골의 허락을 요청하고[請傳位], 황제는 이를 허락하면서 세자를 책봉하고, 전 왕에게 국인(國印)을 회수하여 새 국왕에게 하사했다. 새로운 국왕은 대개 몽골에서 임명받았으며, 이후 고려로 귀국하여 백관의 하례를 받는 즉위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처럼 국왕의 즉위에 대해 몽골 황제가 관여하는 의례가 반복되면서 국왕의 즉위는 책봉과 결합한 의례라는 의미가 강화되었다. 즉위의 외교 형식이 재차 변화한 것은 우왕 대이다.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어 즉위한 우왕은 이에 대한 인정을 요청하는[請承襲] 사신을 파견했다. 이때 고려는 북원과 명이 대치하고 있는 상에서 명에 대한 사대 외교가 시행되고 있었나 북원은 고려와의 관계가 명을 견제하기 위해 중요했으므로 적극적으로 공민왕을 조문하고 우왕을 책봉했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10년간 8차례에 걸쳐 명에 공민왕의 시호와 우왕의 승습 인정을 요청하면서 외교 노선을 분명히 했다. 우왕의 승습 요청은 명에 대한 사대 외교 노선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충렬왕 대 이후 전위 요청과 승인, 국왕의 즉위 과정에서 몽골의 국인 회수와 하사라는 의례가 반복되면서 국왕 즉위에 관한 외교 형식의 변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고려 국왕 즉위에 관한 외교 형식의 의례적 변화는 고려의 정치와 국제 정세를 반영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International relations of East Asian premodern society were established and kept limiting dominance of realistic power among nations to ritual order of Confucian political ideas. The most important medium of ritual order like this was enthronement and diplomacy regarding kings' enthronement which informed people of new kings' enthronement and led their investiture is the subject that can show relations among nations and political natures. Diplomatic formalities regarding enthronement of kings of Goryeo are divided into Chingsa(稱嗣), Cheongjeonwi(請傳位), and Cheongseungseup (請承襲). Most of Kings' enthronement in the early Goryeo Dynasty consisted of Sawi, which is a method of succession to the throne based on the recognition that Kings' political authority carries on legitimacy through bloodgiven succession. The kings who mounted the throne sent envoys who inform other countries of Sawi(稱嗣) to them and posted Pyomun. Then, the other countries sent condolence calls and Giboksa and Chaekbongsa who gave recognition to the new kings in time. This procedure was established as the ritual procedure among the Goryeo Dynasty and the countries that invested with stable succession to the throne called Sawi. Unlike Sawi, Seonyang was done depending on realistic political struggles for power and the powerful's will. Originally, Seonyang means to sell the pass to the high-calibre people. However, in reality, Seonyang means that kings were deposed under pressure of power and another kings mount to the throne being enthroned. In the Goryeo Dynasty, Hyeonjong of Goryeo's accession to the throne by the Political Upheaval of Gangjo, the case that Sukjong of Goryeo was abdicated from Heonjong of Goryeo, his nephew, and change of the throne by the military powerful are applicable to this. The Goryeo Dynasty informed the Liao Dynasty and the Jin Dynasty of the fact of Seonyang after the new kings' enthronement. Because the Liao Dynasty and the Jin Dynasty knew that they cannot get involved in change of the throne in the Goryeo Dynasty, they gave ritual recognition to it if the bilateral relationship is kept like before even though the throne is changed in the Goryeo Dynasty.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ryeo Dynasty and Mongolia, the ritual surrounding the Kings' enthronement and positions and authority as the kings of the Goryeo Dynasty clearly change from before. The kings from Chungnyeol of Goryeo to Chunghye of Goryeo asked Mongolia's permission to make the kings abdicate the throne in favor of the crown princes [請傳位]. And as the emperors allowed this, the crown prices were invested and Kukin (國印) was given to the new kings. The new kings were generally invested from Mongolia. And after then, they returned to the Goryeo Dynasty and the enthronement ceremony to receive all the government officials' congratulatory ceremony was held. As the formalities that the emperors of Mongolia were involve in the Kings' enthronement like this were repeated, the meaning that Kings' enthronement is the formalities which are combined with investiture was strengthened. Enthronement's diplomatic formalities were again changed in the reign of U of Goryeo. U of Goryeo who mounted the throne after Gongmin of Goryeo suddenly died sent an envoy to ask its recognition [請承襲] to other countries. At this time, in the Goryeo Dynasty, diplomacy which was dependent on the Ming Dynasty was carried out while it was confronting against the Northern Yuan Dynasty. However, because the relationship with the Goryeo Dynasty was important to the Northern Yuan Dynasty to check the Ming Dynasty, the Northern Yuan Dynasty actively offered condolences for Gongmin of Goryeo and invested U of Goryeo as the king. However, as the Goryeo Dynasty did not recognize this and asked the Ming Dynasty to give recognition to Gongmin of Goryeo' posthumous name and U of Goryeo's succession to the throne eight times for ten years, it clarified its political course.

I. 머리말

II. 칭사위(稱嗣位)와 왕위계승 외교의 의례성(依例性)

III. 청전위(請傳位)와 국왕의 권위의 복합성

IV. 청승습(請承襲)과 대명 외교 노선 강화

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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