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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지도연구 제15권 제1호.jpg
KCI등재 학술저널

17세기 조선판 아틀라스 『輿地圖』의 탄생

중화세계의 중심이던 명이 망하고 청이 조선에 군신관계를 강요한 상황에서 또한 서양의 지리지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전통적인 세계관에 대한 도전을 의식하던 상황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판 아틀라스 『여지도』를 만들어 지도 속에 중화문명의 복원과 계승에 걸맞은 당위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고자 했다. 이 지도집을 만들던 시기의 청은 무력으로 조선을 굴복시킬 수 있는 세력이었지만, 조선 지식인의 사고 속에서 청은 역사적 경험으로나 명분 면에서나 100년 안에 멸망하고 말 오랑캐 왕조였다. 중화문명의 중심인 중원에는 다시 그 문명을 계승할 세력이 다시 자리를 잡을 터였다. 『여지도』는 중화세계가 구축했던, 그리고 이제는 복원해야 하는 당위의 공간을 표상하는 지도로서, 실용적인 지도 매체인 동시에 프로파간다이자 정치적, 윤리적, 지리적 교양을 공유하는 교재였다. 이러한 『여지도』는 17세기의 등장 이래 조선 지식계의 풍향에 부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까지 원형 「천하도」를 포함한 13매 구성의 지도집이 목판본으로 또는 필사본으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Constructing the world as it should be in a new atlas, intellectuals of the Joseon Kingdom intended to cope with tough political situation forced by Ching China in the 17th century. Although Ching China's military power was strong enough to defeat the Joseon Kingdom in this period when the atlas was made, Joseon intellectuals thought that Ching would be destined to collapse within 100 years as it was a barbarian country. Yeojido include maps which represent the world as it should be under the Chinese world order. Since the first publication in the latter part of the 17th century, this atlas functioned as both practical maps and propaganda. Satisfying the intellectuals' ambitions to reconstruct the world as they should revive, this atlas could survive until the 19th century.

1. 서론

2. 『여지도』 제작의 배경

3. 『여지도』의 구성 원리

4. 『여지도』 초기 판본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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