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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사학보 제47권.jpg
KCI등재 학술저널

고구려 유민의 折衝府 복무 특징과 변화 양상

고구려 유민 1세대와 후속 세대는 고종 대부터 현종 대까지 부병제가 정상 작동하던 시기를 거쳐 변질과 해체 및 붕괴의 흐름 속에서 절충부의 무관으로 복무하였다. 고구려 유민 묘지명을 통해 개원연간(713~741)까지 모두 15명의 유민이 30개의 절충부(중복 지역 1개, 절충부명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 2개 포함)에서 복무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종 대에는 7명의 고구려 유민의 절충부 복무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중 3명, 高乙德, 高足酉, 高文協이 京兆府 소속의 절충부의 절충도위에 제수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長上折衝’으로 禁中에서 교대 없이 숙위하였는데 장상절충이나 장상과의에 임명되는 것은 일종의 우대나 포상의 일환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曹三良, 薛仁貴, 劉仁願 역시 절충부 무관과 더불어 장상에 제수되어 금중에서 복무하였다. 절충부의 무관 임명은 수도로부터 먼 지역에서 하남부, 경조부로, 별장에서 절충과의, 절충도위의 위계에 따라 승진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구려 유민이 경조부의 절충도위로, 그리고 장상으로서 교대 없이 금중에서 숙위하는 임무를 맡은 것은 절충부의 무관 임명에서 특별대우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현의 경우 묘지명에는 평양 공격의 선봉에 나서 공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논공에서는 크게 평가받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關內道의 丹州 宜城府左果毅都尉로 경조부를 벗어난 지역에서 당에서의 관력을 시작하였고 이후에도 파격적인 승진은 없었다.

The displaced people of Goguryeo were assigned mainly to Zhechongbu(折衝府) of Jingzhaofu(京兆府) in Xian during the reign of Emperor Gaozong of Tang. Many of them administered the palace guards who came up to Xian from the local corps. Tang Dynasty assigned duties of management of the palace guards to Goguryeo people while putting them into the government office. Later, Goguryeo people were dispatched mainly to Zhechongbu rather than Jingzhaofu. Zhechongbu was strategically important as a traffic route from Xian to Luoyang, eastern capital, while defending the two capital cities. In addition, the displaced people of Goguryeo were in charge of managing general infrastructures. Each reginal Zhechongbu mainly takes charge of training the military ranks while dealing with various local specific issues. For example, they strengthened the national defense against possible aggression in the area of rampart while guarding and maintaining the imperial tombs, detached palaces, storage facilities, etc. They guarded emperors when the emperor visited the detached palace as well.

Ⅰ. 머리말

Ⅱ. 유민 1세대 절충부 武官 制授의 특징

Ⅲ. 후속 세대의 절충부 복무의 실제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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