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군은 1943년 8월부터 「해군특별지원병령」에 의한 조선인 병력동원을 시행하였다. 이는 육군보다 5년가량 늦은 것이었는데, 이렇듯 해군 측이 조선인 병력동원을 늦게 추진한 것은 조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우려와 불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황이 악화되고 일본인 병력자원이 부족하게 되자 결국 조선인을 대상으로 해군 동원을 시행하게 된다. 그동안 일본 해군의 조선인 병력동원에 관해서는 제한된 자료의 내용으로 인해 그 구조와 실태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조선에서 1943년부터 해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시작되고, 1944년부터는 징병제가 시행되었다는 도식적인 설명은 해군의 병력동원 구조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했다. 이글에서는 일본 해군의 조선인 특별지원병제도 시행 실태를 제도와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병력동원의 구조와 방식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 해군은 지원병제와 징병제를 함께 활용하여 조선인에 대한 병력동원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존에 알려져 있던 자료 내용과 달리 조선인 동원 규모는 징병보다 지원병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 해군 측이 우수한 병력을 확보하고자 모집을 통해 직접 양성하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조선인은 애초 수병이나 정비병으로 동원되었는데, 1945년 이후에는 전체의 50%가량을 공작병으로 동원하려 했음이 확인되었다. 미군의 공습과 상륙을 막기 위해 비행기지와 지하시설 등의 건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The Japanese Navy has mobilized troops against Koreans since August 1943. The Navy's late push for the mobilization of Korean troops was due to concerns and distrust of Koreans. However, as the war situation worsened and Japanese military resources became scarce, naval mobilization was eventually implemented against Koreans. Until now, the structure and status of the Japanese Navy's mobilization of Korean troops has been poorly understood due to data limitations. The sketchy accounts of the start of the naval special assistance system in Korea in 1943 and the conscription system in 1944 make it even more difficult to understand the structure of the navy's troop mobilization. This article examines the status of the Japanese Navy's implementation of the Korean Special Support System through institutions and examples, and explains in detail the structure and methods of troop mobilization. The results show that the Japanese Navy utilized both the volunteer and conscription systems to mobilize the Korean population. Contrary to what is known, the scale of Korean mobilization was greater through volunteers than conscription, as the Japanese navy preferred to train them directly through volunteers in order to secure high-quality troops. Meanwhile, Koreans were initially mobilized as sailors and mechanics, but after 1945, about 50% of the total number of Koreans were mobilized as engineers. This was due to the need to build airfields and underground facilities to prevent American air raids and landings.
Ⅰ. 서론
Ⅱ. 일본 해군의 조선인 특별지원병제도 시행 실태
Ⅲ. 일본 해군의 조선인 병력동원 구조와 방식
Ⅳ. 일본 해군의 조선인 병력동원 규모와 특징
Ⅴ.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