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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8세기 조일 외교 속 쓰시마 번 裁判役의 역할

근세 쓰시마 번(對馬藩)에서는 조선과의 외교 절충을 위해 왜관으로 재판역(裁判役)을 파견했다. 하지만 재판역의 임용에는 반드시 외교적 능력이 고려된 것이 아니었으며, 번사(藩士)들에 대한 부조(扶助) 제공, 즉 경제적 요인이 우선되기도 했다. 이에 이즈미 조이치(泉澄一)는 조일 외교에서의 재판역의 중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쓰시마 번의 사료 속에서 확인되는 재판역은 ‘양국 교제를 주관하는 직책으로, 그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兩國交際主管之職, 而不可無其人)’는 직책, ‘조선에 관련된 역직들 중 재판역은 어느 직책보다 중요한 직책(朝鮮役之內にて, 裁判は何役より大切なる役)’, ‘조선 통교는 그 역할에서 본다면 재판역은 제일의 도구(朝鮮御通交之義ハ其御役儀ニ被爲附候而ハ, 裁判役之儀者第一之御道具)’ 등으로 표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재판역은 근세 조일 관계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우선 재판역은 쓰시마 번의 직책이면서도 단순히 쓰시마 번에만 충성을 다하는 직책으로 기대되지 않았다. 양국 선린 관계에 있어서 성신을 보여야 하는 직책으로 양국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기대받고 있었다. 이는 조선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왜관을 출입하는 왜학역관들은 재판역이라는 직책에 기대하여 갈등의 중재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재판역은 왜관의 우두머리인 관수 다음가는 거물급 인사였지만, 그 한편으로 왜학역관들이 평소에 격의 없이 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쓰시마 번 당국에서는 재판역이 왜학역관들에게 매번 향응을 베풀도록 장려하여 재판역과 왜학역관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이를 관계를 통해 교섭에서 왜학역관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요컨대 재판역은 기본적으로 쓰시마 번의 가신으로서 쓰시마 번의 역할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양국의 중재자적 역할을 기대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점에서 재판역은 근세 조일 외교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726년 1월에 왜관 체류자들이 조선의 시탄고를 파괴한 사건의 수습 과정을 살펴보면, 재판역은 위와 같은 위치를 이용하여 사건을 무마시키려 하고 있었다. 왜학역관들에게 ‘재판역은 양국의 중재자’ 혹은 ‘재판역 정도라면 실제로 조용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의였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갈등이 아닌 것'으로 무마시킬 수도 있던 점이 재판역이 자신의 특수한 위치를 통해 쓰시마 번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던 부분 중 하나였으며, 근세 조일 외교에서 수행할 수 있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In the early modern period, Tsushima domain dispatched a Saihanyaku to Waegwan for diplomatic compromise with Joseon. However, diplomatic capabilities were not necessarily considered in the appointment of it. Thus, Izumi Choichi questioned the importance of Saihanyaku in Joseon-Japan diplomacy. However, according to Tsushima domain’s records, Saihanyaku was “indispensable position”, ”the most important position” and “the best tool” of Joseon-Japan diplomacy. During the early modern period, Saihanyaku had a unique position in Joseon-Japan diplomacy. First of all, as a Tsushima domain’s retainer, Saihanyaku was not expected simply loyal to Tsushima domain. It was expected to play a role in mediating conflicts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short, Saihanyaku basically had to speak for Tsushima domain’s profit as a retainer of Tsushima domain, but at the same time, Saihanyaku was expected the role of mediator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is respect, it can be said that Saihanyaku was in a unique position in the early modern period Joseon-Japanese diplomacy. And looking at the process of settling the case in which Waegwan residents destroyed Joseon’s warehouse in January 1726, Saihanyaku was trying to cover up the case unofficially using its unique position. It can be said that it was a possible scheme because it was premised on the perception that “Saihanyaku are mediators of the two countries” or “Saihanyaku would actually be able to be handled quietly”. The fact that the case had the possibility that could have been covered up as if “there were no conflict” means this is one of the parts where Saihanyaku was able to benefit Tsushima domain, and it was one of the important roles that Saihanyaku could play in the early modern Joseon-Japan diplomacy.

Ⅰ. 시작하며

Ⅱ. 재판역의 위치

Ⅲ. 재판역과 왜학역관의 관계

Ⅳ. 양국의 갈등 발생과 재판역

Ⅴ.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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