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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중일전쟁의 개전과 1930년대 동아시아 국제정치

The Beginning of the Sino-Japanese War and International Politics in East Asia in the 1930s: Focusing on the Protracted Course of the War

DOI : 10.24939/KJH.2023.8.6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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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의 개전과 장기화 과정을 살펴볼 때, 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본의 침략적 대륙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중일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 등 주변국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개전 후 전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중일전쟁에서 중국 정부는 소련,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의 지원을 받아 8년간에 걸친 장기전을 수행했다는 점, 그리고 이 전쟁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국제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단 일본 지도부 내의 전쟁 확대 결정, 장기 지구전 수행 결정 과정뿐만 아니라, 전쟁을 둘러싼 외교적 과정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택한 동아시아 정책은 중국 대륙에 대한 적극적인 영향력 확대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방침은 육군이 주도한 화북 분리 공작 등 침략적인 대중 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대중 정책에 대해, 중국 정부는 저항하기 위한 내정적, 외교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으며, 동아시아 지역 문제에 주목하고 있던 소련과 미국은 중일간 분쟁에 대해 점차 중국을 지원하고 일본의 침략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 1935년은 화북 분리 공작으로 상징되듯, 일본의 대중정책이 노골적으로 침략성을 띠기 시작한 해이며, 이 해를 기점으로 중소 관계가 우호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일간의 분쟁을 둘러싼 주변국의 태도가 중국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던 것이, 중일전쟁의 개전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중일간의 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소극적인 태도를 바꾸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대중정책이 지닌 침략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1939년 이후 미국이 미일통상항해조약을 폐기하고 일본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의 전쟁 수행에 대한 재정적 원조를 실시하는 등, 중일전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When examining the outbreak and protracted course of the Sino-Japanese War, it is important to note the attitudes of neighboring countries such as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oward the Sino-Japanese issue, which arose as a result of Japan's aggressive continental policy, and how these attitudes influenced the outbreak of the war. Given that the Sino-Japanese War was a protracted eight-year war fought by the Chinese government with the support of the Soviet Union, the United States, and the United Kingdom, and that it was an international event that directly influenced the outbreak of the Asia-Pacific War,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diplomatic process surrounding the war, not just the decision to escalate the war within the Japanese leadership and the decision to wage a protracted global war. After the Manchurian Incident, Japan's East Asian policy included an aggressive expansion of its influence on the Chinese mainland, which was embodied in aggressive public policies such as the army-led campaign to separate Hwaseong from North Korea. In response to these Japanese public policies, the Chinese government actively sought internal and diplomatic means to resist, while the Soviet Union and the United States, both of which were paying attention to East Asian affairs, gradually shifted their policies toward supporting China in the Sino-Japanese conflict and deterring Japanese aggression. The fact that 1935 was the year when Japan's public policy became overtly aggressive, as symbolized by the separation of Hwaseong, and that Sino-Japanese relations began to trend in a friendly direction from this year shows that the attitude of neighboring countries toward the Sino-Japanese dispute had already shifted in a direction favorable to China before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머리말

Ⅰ. 일본의 동아시아 전략과 대외관계

Ⅱ. 중국의 「국제적 해결」 전략과 중일관계의 악화

Ⅲ. 중일전쟁의 개전과 장기화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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