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사의 전개 양상을 보면 18세기 중엽 우춘대, 하한담, 최선달로부터 시작하여 19세기의 전·후기 8명창, 그리고 20세기의 근대 5명창과 현재 활동하던 여러 창자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판소리 창자의 사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판소리는 시간 예술이므로 전승이 끊긴 소리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판소리 창본에는 당대 명창의 소리 특징과 향유층의 다양한 비평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학교 홍윤표 교수가 1994년 충남 천안의 고서점에서 구입한 ‘홍윤표 소장 154장본 <춘향가>’는 154장의 장편물이라는 점과 완자, 사설, 서음 등 현행 판소리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는 음악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19세기 후반기의 장자백 창본 및 완판본 <춘향전>과 일치하는 예가 거의 없다는 점 등에서 과연 소리판에서 연행되던 소리의 창본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본고의 고찰 결과 홍윤표 소장 154장본 <춘향가>에 쓰인 완자, 사설, 서음, 품 등의 음악적 표지는 판소리가 현재와 같은 음악적 체계를 갖추기 이전인 19세기 중엽까지 쓰인 장단과 소리조 용어임이 밝혀졌으며, 이 자료에 나타난 단위사설은 1860년대 무렵 서울 지역에서 유통되던 『남원고사』 계열의 필사본과 『경판 35장본』의 내용 및 구성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는 주로 완판본과 19세기 후반기 이후에 형성된 동·서편제 판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는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와 중고제가 급격히 쇠퇴하여 중고제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고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필사본 창본의 필사 연대 역시 19세기 중엽 이전으로 올라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본고에서 홍윤표 교수 소장 154장본 <춘향가>를 고찰한 결과 19세기 중엽 경기·충청권에서 연행된 중고제 판소리의 음악적 특징과 사설 구성의 특징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홍윤표 소장 154장본 <춘향가>는 현재 전승되지 않고 있지만, 판소리사에서 전승이 끊어진 19세기 경기·충청권에서 불리던 중고제 판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판소리사적 가치가 높은 필사본 창본이다. 앞으로 홍윤표 소장 154장본 <춘향가>과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을 담고 있는 또 다른 자료와의 비교를 통하여 현대 판소리의 사설 및 음악적 특징이 형성되기 이전 다양한 양상으로 꽃피웠던 판소리 음악문화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The 154-sheet Chunhyangga that Prof. Hong Yun-pyo of Yonsei University bought at an antique bookstore located in Cheon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in 1994 has stirred up controversy. Many people believed it was not the text of sound performed at soripan because it is a long piece of 154 leaves, and because musical terms are featured which are not used at all in present pansori, such as wanja, saseol and seoeum, and because it is quietly different from the Jangjabaek text and wanpanbon Chunhyangjeon of the late-19th century. After considering the sematters in this study, it was found that musical marks, such as wanja, saseol and seoeum, which were used for the 154-sheet Chunhyangga owned by Hong Yun-pyo were terms related to rhythm and sound that were used until the mid-19th century when pansori didn’t feature the hallmarks of today’s pansori musical system. In addition, the inserted songs and saseol unit appearing in this study are related to the contents and construction of pilsabon that belong to Namwongosa and the gyeongpan 35-sheet which were circulated in the Seoul area in the 1860s. Discussions on the correlation between pansori and pansori novels have been mainly about the Wanpanbon and Dongpyeonje and Seopyeonje pansori that were formulated after the late-19thcentury. This is because Junggoje was rapidly declining in the late-19thcentury, related data are unavailable, and there are practical limitations that indicate that the period of transcription of widely-known pilsabon changbon occurred only about the mid-19th century. After considering the 154-sheet Chunhyangga musical characteristics of Gyeongje pansori and characteristics of the construction of saseol performed in the Gyeonggi and Chungcheong areas before the mid-19th century can be grasped. The 154-sheet Chunhyangga owned by Hong Yun-pyo hasn’t been made available to the public, but it is a pilsabon text which is highly valuable in terms of pansori history in that it has features of Junggoje pansori that was sung in the Gyeonggi and Chungcheong areas in the 19th century. The Junggoje form of pansori has not been passed on well in the history of pansori. It is expected that there will be more studies about the musical culture of pansori that developed in various patterns before the saseol of modern pansori and about musical characteristics that have been formed by comparing the different data contained in the 154-sheet Chunhyangga and Junggoje pansori.
1. 머리말
2. 음악적 표지를 통한 창본적 성격 검토
3. 사설 형성의 지역 및 시기와 장편화의 원인 검토
4.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