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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판소리 <적벽가>와 적벽가 계열 잡가의 교섭 연구

김관준 작 서도창 <적벽가> · <전쟁가>를 중심으로

평남 용강 출신의 서도 명창 김관준은 20세기 초(1900~1910년대) ‘판소리 <적벽가>’에 기반하여 ‘서도창 <적벽가>·<전쟁가>’를 지었는데, 이 두 노래는 그의 제자들인 아들 김종조를 비롯한 김칠성, 최순경, 김주호 등에 의해 불려지며 사설의 변화와 확장을 겪게 된다. ‘서도창 <적벽가(화용도)>’는, ‘판소리 <적벽가>’의 ‘조조 패주’ 대목들을 본뜬 것이다. ‘죽고타령’, ‘조자룡 출현’, ‘장비 출현’, ‘관우 의석조조(義釋曹操)’ 등으로 구성된 김칠성의 <화용도>는 원작(김관준의 <적벽가>)을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이에 반해 김종조는, 조조의 화용도 진입 전 대목들을 모두 제거하고 ‘관우 의석조조’ 대목을 크게 확대하는 전면적인 개작을 시도하였다. 작품의 전반부 즉 화용도 진입부터 관우의 등장 전까지는 ‘판소리 <적벽가>’의 사설을 참고하였지만, 작품의 후반부 즉 관우의 등장 이후 부분은 ‘경기 12잡가 <적벽가>’의 사설을 대폭 수용하였다. ‘서도창 <전쟁(장)가)>’는 ‘판소리 <적벽가>’의 「군사설움타령」을 모방한 것이다. ‘첫째 군사설움(초야 징집)’과 ‘둘째 군사설움(부모처자 생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김경복의 <전장가>가 이 노래의 결정판이고, ‘둘째 군사설움(부모처자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김주호와 박수관의 <전쟁가>가 원작(김관준의 <전쟁가>)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서도창 <전쟁(장)가)>’는 ‘부모처자 생각’ 대목에 ‘초야 징집’ 대목이 덧붙으며 확대되었고, 김종조는 판소리 <춘향가>의 ‘나귀 안장 짓는 데’ 대목의 한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 ‘초야 징집’ 대목에 삽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쟁(장)가>는 후대의 확장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판소리 <적벽가>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잡가는, 1900년대에 극장가에서 널리 공연되어 대중의 호응을 얻고 1910~20년대에 다수의 잡가집이 저작되는 등, 20세기 초 30년가량 그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다. 김관준이 ‘판소리 <적벽가>’에 기반하여 20세기 초에 ‘서도창 <적벽가>·<전쟁가>’를 창작한 것과, 이후 그 노래들이 대중의 기호에 따라 변화·확장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Gimgwanjun is Seodo master singer from Pyeongannam-do Yonggang. In the early 20th century(1990~1910s), He made ‘Seodochang <Jeokbyeokga>·<Jeonjaengga>’ on the basis of ‘Pansori <Jeokbyeokga>’. This songs‘ Sasul has been changed and expanded by his pupils who are his son Gimjongjo, Gimchilseong, Choesungyeong, Gimjuho. ‘Seodochang <Jeokbyeokga(Hwayongdo)>’ is modeled on ‘Jojo Paeju’ part of ‘Pansori <Jeokbyeokga>’. Gimchilseong’s <Hwayongdo> composed of ‘Jukgotaryeong’, ‘emergence of Jojaryong’, ‘emergence of Jangbi’, ‘Gwanu Uiseokjojo(義釋曹操)’ seems that it is similar to the original version(Gimgwanjun’s <Jeokbyeokga>). On the contrary, Gimjongjo tried to overall changes that he removed all parts before Jojo’s Hwayongdo entry and expanded the ‘Gwanu Uiseokjojo(義釋曹操)’ part remarkably. He refered to Sasul of ‘Pansori <Jeokbyeokga>’ in the first half of work. However, he refered to Sasul of ‘Kyeonggi 12 Japga <Jeokbyeokga> drastically in the second half of work(after Kwanu’s appearance part). ‘Seodochang <Jeonjaeng(jang)ga>’ imitated 「Gunsaseolum taryeong」 of ‘Pansori <Jeokbyeokga>‘. Gimgyeongbok’s <Jeonjangga> composed of the first Gunsaseolum(‘C​onscription in first marriage night’) and the second Gunsaseolum(‘Concern about family’) is a definitive edition. then, Gimjuho and Baksugwan’s <Jeonjangga> only made up of the second Gunsaseolum(‘Concern about family’) seems to be close to the original version(Gimgwanjun’s <Jeonjaengga>). The part of ‘C​onscription in first marriage night’ is added to the part of ‘Concern about family’ and ‘Seodochang <Jeonjaeng(jang)ga>’ expanded. Moreover, Gimjongjo put a one part ‘saddling up a donkey’ of Pansori <Chunhyangga> intactly into that part of ‘C​onscription in first marriage night’. <Jeonjaeng(jang)ga> has been consistently influenced by Pansori <Jeokbyeokga>. In 1990s, Japga is widely presented in theater and catched on with the public. Besides, Many Japga albums maded in 1910~1920s. In this way, Japga was at its best for thirty years in the early 20th century. Gimgwanjun created ‘Seodochang <Jeokbyeokga>·<Jeonjaengga>’ on the basis of ‘Pansori <Jeokbyeokga>’ in the same period, and the songs changed and expanded to suit public. It is that Gimgwanjun promptly met the needs of the times.

1. 머리말

2. 서도창 <적벽가(화용도)

3. 서도창 <전쟁(장)가>

4. 맺음말 – 생성 및 변모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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