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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6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상투는 언제 사라졌나?

When did topknots disappear in Korean?

DOI : 10.29004/jkmch.2023.09.10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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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근대 한국인의 오랜 문화 형태 중 하나인 상투가 언제 사라졌는지살펴보았다. 흔히 상투는 1930~1940년대 조선총독부가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전반에 대한 강력한 압박정책인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하면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1920년대 후반 생활개선운동의 사례는 이에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이 연구는 식민지 조선 사회 변동의 중층적 원인을찾는데 도움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체제기 이후 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에서 정책적으로 상투와 백의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보다 앞서 1920년대 후반~1930년대초반 조선일보, 천도교, 신간회 등이 생활개선운동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단발캠페인을 벌여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의사회 변동이 총독부의 정책적 개입이나 물리적 강제뿐만 아니라 조선인 사회의 내적 요구와 연결되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When did topknots, called sang-tu, disappear in Korean? People generally say it probably disappeared after the early 1930s because Imperial Japan had banned it as a policy at the time in colonial Korea. Is that true? The case of the movement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生活改善運動 in the late 1920s calls for a reexamination of such academic understanding. This research is expected to help find internal causes of social changes in colonial Korea. It is true that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weakened Korean traditional culture like topknots, white clothes, and so on after the wartime. But Chosun-ilbo(朝鮮日報), Shin-gan-hwe(新幹會) carried out the movement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conditions and campaigned short hair(斷髮) from the late 1920s to the beginning of 1930s and the attempts were partially successful. This shows the multi-layered causes of social changes in colonial Korea, related to Korean people’s demands as well as the policy intervention and physical forcing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1. 머리말

2. 식민지 조선의 과도기적 상황과 생활개선 운동

3. 단발의 확산 배경

4. 지식인층의 단발 담론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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