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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6집.jpg
KCI등재 학술저널

해방정국기 養虎團의 조직과 활동

해방정국기 좌우 세력의 분화가 심화되자, 청년들은 갈등의 전면에서 정치세력의 전위대로 활동하였다. 따라서 해방정국기 좌우 대립의 모습과 우익 청년단체의 전체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활동한 청년단체의 분석이필요하다. 이 글은 1945년 11월부터 서울에서 활동한 우익 청년단체 양호단의 조직과 활동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양호단 주요 인사들의 이력을 확인하였고 해방 이후 양호단이 결성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일제시기 함남 원산에서 김성을 중심으로 맺어진 청년들의 인적 관계는 해방이후까지 이어졌다. 원산 청년들은 월남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특파사무국 소속청년들과 함께 양호단을 결성하였다. 양호단은 1945년 11월부터 임시정부 지지 활동과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습격, 신탁통치반대운동에 많은 청년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단장 김성의 사망과 우익 청년단체의 재편 과정에서 영향력이 약화되며 와해되었다. 양호단 청년들은 백의사와 군, 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원산청년회를 통해 관계를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북청년회 결성 시 참여했으며 공식 해산 이후에도 인적 관계를 지속하며반공 활동을 지원했다.

During the period of political situation of Korean liberations, right-wing youth acted as a front of right-wing political forces. Youth were at the center of the confrontation of each political force. Therefore, in order to confirm the appearance of the political force confrontation, an analysis of the organizations that were active right after Liberation in necessary. This article studied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right-wing youth organization YANG HO DAN which was active in Seoul from November 1945 to December 1946. To confirm this, the history of major figures was checked, and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the YANG HO DAN were analyzed.

1. 머리말

2. 양호단의 결성

3. 양호단의 활동

4. 양호단의 분열과 와해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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